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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 글항아리 -제2부-

by Radimin_ 2016.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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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목 차 -


1. 들어가며: 수저계급론에 관하여

2. 자본주의에 내재된 양극화의 힘

  2.1 자본주의에 내재된 양대 힘: 수렴의 힘과 양극화의 힘(r>g)

  2.2 자본/소득의 비율은 국민소득의 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 : α=r×β

  2.3 자본/소득 비율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 : β=s/g

  2.4 자본수익률(r)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제2부 목 차 -


3. 개인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의 구조

4. 세계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의 구조




제1부에서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양극화의 힘에 대해서 피케티가 제시한 자본주의의 법칙들과 관련 변수들의 동학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산업혁명 직후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국민소득의 7배에 달했던 자본총량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민소득의 2~3배가량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자본이 빠른 속도로 재건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국민소득의 6배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특히 저성장 사회에서 자본의 재건이 이루어지는 경향을 우리는 β=s/g의 법칙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아울러 r>g의 상황은 자본/소득 비율을 상승시키는데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1보다 큰 자본-노동 간 대체탄력성에 의해 자본/소득 비율의 증가에 따른 r의 감소가 제약됨에 따라 우리는 자본/소득 비율의 상승에도 자본소득 분배율이 반드시 감소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살펴보았다(α=r×β).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즉 장기적으로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 분배율과 노동소득 분배율을 균형 상태로 이끄는 자동적인 메커니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 문제는 시장의 불완전성과 상관없이 자본주의에 내재된 고유한 속성에 의해 촉발된다. 이렇듯 경제적 상태를 바람직한 균형으로 이끄는 자기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장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에 의존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부정적 경향성을 조정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제1부에서 자본주의의 양극화의 힘을 법칙과 수식으로 살펴보았다면, 지금부터는 불평등의 구조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의 경제상황은 어떠한 불평등 구조에 직면해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피케티의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3. 개인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의 구조


사회적, 세계적 수준의 불평등의 구조를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개인적 수준의 불평등의 구조가 어떠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평등은 과연 개인의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 녹아들어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이 점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불평등의 구조를 미시적 차원에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피케티는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프랑스를 조명하면서 그 시대에 살았던 개인들이 과연 어떠한 경제적 불평등에 놓여있었는지 설명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 시대의 부유층이 누리는 생활수준은 노동에 기초한 소득만으로는 누릴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여기서의 노동이란 단순 노무직뿐만 아니라 고위관료, 법관과 같은 고급직종의 노동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시대에는 개인이 노력하여 최고 수준의 노동소득을 올릴 수 있는 명망 있는 직업과 높은 지위에 오른다 할지라도 그것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노동소득이란 부유층의 상속받은 유산으로부터 나오는 자본소득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부를 소유하지 못한 개인들이 자신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산을 상속할 상속인을 찾거나, 부유층 인사와의 결혼을 통해 막대한 결혼 지참금을 챙기는 일 뿐이었다. 이러한 구조는 분명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이 아니었다. 불평등 그 자체에 대한 정당성은 오늘날에도 치열하게 토론되고 있지만, 이 시기의 불평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정당화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상속 자산으로 유지되며 고착화된 불평등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노동소득의 불평등보다 압도적으로 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자본소유자들은 그들의 압도적인 자본소득을 바탕으로 전혀 노동에 참여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들이 하는 일이란 사교계에 드나들면서 자신의 자산과 품위를 과시하고 명성을 획득하며 이를 통해 각계 고위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뿐이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등장하는 으젠 라스티냐크와 같은 인물은 자산을 거의 갖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자산소유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사교계에 진출하여 자신의 매력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끌어올려줄 적당한 귀부인을 물색하고자 한 전형적인 인물이다. 



물론 양차 세계대전 이후 자산소유자들이 몰락하면서 수십 년 동안은 상속 재산의 중요성은 상당히 퇴색되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이전에 비해 노력과 학업 정진을 통해 계층이동이 가능했고, 계층 간 이동의 유동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 시기부터 사회에는 자본소유자들에 의한 고착화된 불평등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능력주의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믿음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분명 라스티냐크가 활동했던 19세기의 프랑스의 상황에 비해 오늘날 불평등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유연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도 낙관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자본소득의 중요성이 노동소득의 중요성에 대해서 바람직한 수준으로 조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피케티는 이 점에 대해서 다소 우려스러운 시선을 던진다. 



피케티의 연구에 따르면 자본에 관한 불평등은 노동에 관한 불평등보다 언제나 크다. 물론 이것이 자본주의에 내재된 불변의 법칙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러한 상황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경향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표현한다면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은 ‘온건한 불평등’,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은 ‘극심한 불평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이 무시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노동소득에서의 불평등은 분명 자본과 자본소득에서의 불평등과 비교하여 온건한 것이 사실이지만, 노동소득이 보통 국민소득의 3분의 2에서 4분의 3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소득에 관한 불평등 또한 면밀히 살펴보아야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더불어 자본소유에 관한 불평등은 ‘극심한 불평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분배 상태가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피케티에 따르면 2010~2011년 데이터에서 프랑스에서는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62퍼센트를 소유한 반면 가장 가난한 50퍼센트는 고작 4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상위 10퍼센트가 국부의 72퍼센트를 소유하고, 하위 50퍼센트는 4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조차도 사실은 과소평가된 부분이 있다. 조사과정에서 재산소유자는 언제나 자신의 재산을 과소평가하여 보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의 자본소유가 극심한 불평등 상태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의 유럽의 자본소유 불평등보다는 극단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앞서 으젠 라스티냐크가 활동했던 시기에서는 상위 10퍼센트가 소유한 부가 전체 국부의 90퍼센트에 이르렀다. 또한 가장 부유한 1퍼센트가 소유한 부는 전체 부의 50퍼센트 이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상속자산과 자본소득의 압도적인 규모, 사교계의 번성과 능력주의의 억압을 가능하게 만든 시대적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에 중산층이란 있을 수 없었다. 단지 엄청나게 부유한 극소수의 자산소유자들과 극도로 가난한 무자산 노동소득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양차 대전 이후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하는 부의 비중이 감소함에 따라 세습가능한 부를 소유한 40퍼센트 중산층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하위 50퍼센트는 여전히 아무런 부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지만 불평등의 구조는 양차 대전 이전과 비교해서 분명히 변화하였다. 



과거 극심한 부의 불평등 시대는 피케티의 표현에 의하면 초超세습사회(자본소득자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부의 불평등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노동소득에서의 불평등 문제가 상대적으로 중요해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총소득 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피케티는 이것이 초超능력주의 사회hypermeritocratic society로 표현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피케티는 이 점에 대해서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피케티는 이후의 논의에서 과연 미국의 총소득 불평등이 능력주의로 표현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개인적 수준에서의 불평등 구조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개인들이 직면했던 경제적 불평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그 이면에 존재했던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 그리고 자본소유의 분배구조가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었으며 그 속성은 어떻고 또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살펴보았다. 이제는 세계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의 구조를 살펴보아야 한다.



4. 세계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의 구조


앞서 살펴보았듯이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불평등의 구조는 내적으로 변화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과 달리 오늘날은 0.1퍼센트의 최상위 계층을 제외한 상위 10퍼센트의 계층이 올리는 소득에서 자본소득의 역할은 부수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불평등의 구조 그 자체가 완전히 변화한 것은 아니다. 비록 순수하게 자본소득만을 올리는 계층이 최상위 0.1퍼센트 수준으로 감소했다고는 하나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수록 자본소득의 중요성이 커지는 구조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위 10퍼센트 내에서 순수 자본소득자의 비중이 현격하게 감소한 것은 틀림없다. 이는 곧 자본소득자 사회에서 경영자 사회로 이행하였음을 의미한다. 자본/소득 비율이 양차 대전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었음에도 상위 계층의 총소득 중 자본소득 비중이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 현상에는 누진세와 상속세가 도입되었다는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을 통틀어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프랑스에서는 상위 1퍼센트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1914년 20퍼센트에서 1945년 7퍼센트로 감소하였다. 또한 상위 10퍼센트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1914년 45퍼센트를 넘었지만 1945년에는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는 상위 10퍼센트 계층과 상위 1퍼센트 계층에 자본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양차 대전의 여파로 무수한 자본이 파괴되었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본소유자들과 채권자들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위 1퍼센트에 비해 나머지 9퍼센트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상위 1퍼센트가 거의 전적으로 자본소득을 소득의 원천으로 삼고 있었는데 반해, 나머지 9퍼센트는 경영자와 고위 직종에 종사하던 계층으로서 안정적인 직업적 토대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 9퍼센트는 전간기와 양차 대전 이후 단기적으로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다. 그리고 이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상위 10퍼센트의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꾸준히 증가하여 결국 산업혁명, 양차 대전, 21세기의 기간 동안 그들이 올리는 소득의 비중이 U커브를 이루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자본소득 불평등이 이와 같았다면 임금 불평등은 어떠했을까? 임금 불평등은 전쟁 중에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정부가 생존 문제에 직면한 최하위 계층의 구매력을 어느 정도 보전해주고 상위계층에 대해서는 감내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피케티에 따르면 임금 불평등은 경기순행적인 경향을 띤다. 이는 경기가 호전될수록 임금 불평등의 정도도 커지며, 반대로 경기가 악화되면 임금 불평등의 정도가 작아짐을 의미한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양차 대전 이후 경기가 회복되자 상위 계층의 임금 상승률이 하위 계층의 임금 상승률을 상회하여 임금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져 이른바 슈퍼연봉이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최고위 경영자들의 전례 없이 높은 임금수준이 관찰된다. 슈퍼연봉을 받는 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전의 자본소득 불평등과 비교해서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불평등의 구조가 역사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거쳐 왔는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한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는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하여 제3부에서는 노동소득의 불평등과 자본소유의 불평등을 살펴보고 능력과 상속이 불평등에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아울러 21세기 글로벌 부의 불평등에 대한 피케티의 분석을 정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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