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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 글항아리 -제3부-

by Radimin_ 2016.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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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목 차 -


1. 들어가며: 수저계급론에 관하여

2. 자본주의에 내재된 양극화의 힘

  2.1 자본주의에 내재된 양대 힘: 수렴의 힘과 양극화의 힘(r>g)

  2.2 자본/소득의 비율은 국민소득의 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 : α=r×β

  2.3 자본/소득 비율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 : β=s/g

  2.4 자본수익률(r)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제2부 목 차 -


3. 개인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의 구조

4. 세계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의 구조



- 제3부 목 차 -


5. 노동소득의 불평등

  5.1 교육과 기술 간 경주 이론과 한계생산성 이론

  5.2 임금불평등과 제도 : 최저임금제와 고정된 임금체계

  5.3 미국의 임금불평등 폭발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5.4 슈퍼경영자들의 도약 : 강력한 양극화의 원인

6. 자본소유의 불평등

7. 장기적으로 본 능력과 상속

  7.1 상속은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7.2 상속액의 비중을 결정하는 세가지 힘 : by=μ×m×β

  7.3 21세기의 상속액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7.4 부유한 사회에서의 극단적인 능력주의

8. 21세기의 자본 규제

  8.1 자본에 대한 글로벌 누진세의 기초 : 사회적 국가

  8.2 글로벌 누진세의 구체적 형태

9. 마치며




제2부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난 불평등의 구조를 개인적 수준과 세계적 수준의 차원에서 분석한 피케티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불평등의 구조가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 원인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더불어 20세기 중에 부의 불평등이 완화된 원인과 이 시기에 등장한 세습중산층은 불평등의 문제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임금불평등과 자본에 관한 불평등을 차례로 분석한 뒤, 이 두 가지 불평등과 관련된 능력과 상속에 관해서 고찰한 피케티의 분석을 정리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불평등 구조 분석을 통하여 피케티는 불평등의 완화를 위해 어떠한 처방을 내리고 있는지 정리할 것이다. 



5. 노동소득의 불평등


이전의 논의에서 우리는 사회와 시기에 따라 임금불평등의 정도와 양상이 차이를 보임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설명하는 다양한 경제학적 이론이 존재한다. 피케티는 이 중 교육과 기술 간 경주 이론, 그리고 한계생산성 이론의 논리를 설명하고 이러한 이론들이 과연 불평등의 문제에 관해 충분한 설명력을 지니고 있는지 분석한다. 



5.1 교육과 기술 간 경주 이론과 한계생산성 이론


교육과 기술 간 경주 이론은 경제적 생산에 기여하는 여러 기능들에 관하여 교육과 기술 간의 경주가 일어나며, 이러한 경주의 과정에서 교육이 기술의 진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임금불평등이 발생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한 노동자의 임금이 그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한계생산성 이론과 같이 논의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은 기술교육을 통한 기능습득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임금은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나 한계생산성의 절대치에 연동되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의 기술수준을 준거로 각 노동자들의 기술 수준의 상대적 차이와 기능에 대한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기능의 공급은 교육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기능의 수요는 생산을 위해 이용 가능한 기술의 상태에 의해 좌우된다. 즉 특정 사회에서 이용되고 있는 특정 수준의 생산기술을 보유한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며(기능의 수요), 교육은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생산기술들을 습득하게 하여 수요에 걸맞는 공급을 창출한다는 것이다(기능의 공급). 임금은 이러한 기능의 수요와 공급의 상대적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현재 이용 가능한 기술수준에 걸맞는 적합한 교육제도가 확립되지 않으면 기능의 공급은 기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서 그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에 대해선 과다 수요가 발생하여 이들의 임금은 상승한다. 반면 교육제도의 미비로 해당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노동자의 공급은 많아져 이들의 임금은 하락한다. 결국 충분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집단들은 저소득 직업으로 밀려나며 노동소득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결국 이 이론에 따르면 노동소득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능의 공급이 기능의 수요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야 한다. 만약 기능의 공급이 기능의 수요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기존의 노동소득 분배 구조는 전반적으로 상향이동 할 뿐 불평등의 구조 자체는 유지되기 때문이다. 즉 불평등 구조의 개선을 위해서는 교육제도 수준이 기술 진보 속도를 충분이 따라잡고도 남아서 앞으로 일어날 기술 진보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선진화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이 이론은 불평등의 문제를 교육문제의 차원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케티는 이 이론이 중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먼저 이 모형은 교육을 지나치게 도구적,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보고 있다. 즉 교육을 경제적 논리와 기술 공급 논리에 종속시키고 있는데, 이는 교육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다. 만약 교육에 대해 이러한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자칫 교육의 본래 의의가 퇴색되고 경제 논리에 완전히 포섭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임금불평등을 단순히 기능의 수요와 공급 원리로만 분석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각 사회, 각 시대는 저마다 고유의 제도적, 규칙적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와 규칙은 정치적 영역에서의 사회적 타협과 합의에 근거한 것이다. 실제로 최저임금제도 등과 같은 제도는 그 사회가 공유하는 사회정의를 토대로 하여 정치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이러한 제도는 기능의 수요와 공급 법칙과는 독립적으로 노동소득 불평등의 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다. 교육과 기술 간 경주 이론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논리와 제도적 요인을 간과하고 있다.



더하여 위 이론의 본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임금이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특정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을 측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지고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한계생산성을 정확히 도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을 명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면 한계생산성을 기준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비합리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계생산성 이론은 이 점을 무시하고 있다. 



위 이론은 분명 노동소득 불평등 문제에 대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자칫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따라서 피케티는 위 이론과 더불어 정치와 제도적 요인들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2 임금불평등과 제도 : 최저임금제와 고정된 임금체계


최저임금제는 임금불평등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도 중 하나이다. 최저임금제는 각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정의에 관한 인식과 규범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분명 임금불평등 구조에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요인이다. 



최저임금제와 같은 고정된 임금체계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특정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을 측정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임금결정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임금결정과정에서 여러 불합리한 요소들이 개입될 여지가 커진다. 이는 임금결정과정에 대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세력에 의해 임금이 결정될 여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고정된 임금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고정된 임금체계는 임금변동을 줄이고 안정적인 지출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으로 작용함으로써 기업의 재정적 예측력과 대처능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정액임금제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급여흐름을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도록 한다. 노동자들을 급여흐름에 대한 안정된 예측을 기반으로 기업이 요구하는 생산기술을 익히는데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급여의 흐름이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힘들다면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미래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결코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제를 위시한 정액임금제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합리성이다.



물론 최저임금제와 고정된 임금체계 또한 임금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충분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세제개혁이나 교육제도의 선진화를 병행하여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임금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보다 합리적인 방향이 될 것이다. 



5.3 미국의 임금불평등 폭발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1980년대 이후 미국 최상위 노동소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한계생산성 이론에 따르면 미국의 최상위 노동소득의 폭발적 증가는 곧 그들의 한계생산성이 폭발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분석이 현실에 부합할까?



미국 최상위 노동소득자들의 임금인상은 매우 극단적이어서 다른 계층의 임금인상에 대해 불연속적이다. 이러한 불연속성은 한계생산성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최상위층과 이에 가장 근접한 상위계층 간에도 임금수준의 불연속성이 뚜렷이 존재하는데, 이 두 계층의 교육수준이나 전문성 등을 비교하면 임금수준 상의 불연속성을 설명할 수 있는 기능수준의 불연속성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최상위층과 상위층 간의 능력 차이는 임금수준의 차이와 비교했을 때 매우 미미하다.



또한 국가 간 비교를 통해 접근하면 일부 선진국에서는 고액연봉의 폭등이 일어났으나 다른 국가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발견된다. 슈퍼경영자의 등장은 영미권 국가에서 주로 나타난다. 그들의 소득은 다른 국가들의 최상위 노동소득자 집단에 비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정보기술의 혁명은 영미권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선진국에도 거의 동일한 영향을 미쳤는데 오직 영미권 국가에서만 최상위 노동소득자계층의 연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상은 교육과 기술 간의 경주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영미권 국가들의 최상위 노동소득자계층의 폭발적이고 불연속적인 연봉상승률은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인용을 참고하자.



“일반적으로 보수는 계층 구조와 상급자들이 정하고 최고위층의 급여는 임원들 자신 혹은 대개 비슷한 급여를 받는 기업(다른 대기업의 고위경영진과 같은) 보수위원회의 위원들이 정한다. 어떤 기업에서는 연차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고위경영진이 받을 보수에 대한 의결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러한 승인을 받는 직책은 소수로서, 모든 고위경영자가 포함되지는 않는다. 기업의 생산량에 대한 각 경영자의 기여도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층 구조적인 관계와 관련자들의 상대적인 협상력에 좌우된 매우 자의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급여를 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에게 관대하거나, 적어도 자신의 한계생산성을 다소 낙관적으로 평가할 자연적인 유인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은 인간적이며, 특히 필요한 객관적인 정보가 굉장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고위경영진에게 ”기업의 돈을 훔친다“고 하는 것은 과도한 비난일 수 있지만 아마도 애덤 스미스가 말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보다는 더 적절할 것이다. 실제로 ‘순수하고 완전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은 항상 기업의 위계구조와 보수위원회 같은 제도 내에서 구체화된다.”[각주:1]



1980년대 이후 세계적 수준에서의 임금불평등의 심화는 고위경영진에 대한 보수의 변화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국가 간 비교에서 언급했듯 영미권 국가를 제외한 선진국들에서는 영미권 국가들만큼 임금상승의 불연속성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덜할지라도 다른 선진국 또만 마찬가지로 불연속적인 임금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다. 



5.4 슈퍼경영자들의 도약 : 강력한 양극화의 원인


“최고위 경영자들에게 주어진 극도로 후한 보수는 부의 분배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강력한 요인이다.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개인들이 자신의 급여를 스스로 정한다면 불평등은 (적어도 어느 한도까지는) 계속 커저만 갈 것이다.”[각주:2]



만약 슈퍼경영자들의 극도로 높은 보수가 그들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책정된 것이라면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보수는 결코 그들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은 기업의 성과와 연동해서 스스로 자신의 보수를 책정한다. 기업의 성과에는 그들의 능력에 의해 창출된 부분과, 그들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창출된 외부적 부분이 공존한다. 만약 그들이 한계생산성에 따라 자신들의 보수를 책정한다면 후자는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창출된 성과까지도 그들의 급여책정에 반영되고 있다. 이것은 최상위층 연봉의 폭발적인 인상에 관여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이다.



6. 자본소유의 불평등


지금까지 노동소득의 불평등 문제 원인을 이론적 관점과 현상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제부터는 노동소득 불평등과 함께 불평등 구조의 한 축을 구성하는 자본소유의 불평등을 살펴볼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에 총소득 불평등이 완화된 것은 자본소유와 자본소득의 급속한 감소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소득 비율이 증가하고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자본의 집중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소유의 불평등 문제는 미래의 불평등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고려해야할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어느 사회나 시대를 막론하고 자본소유와 자본소득의 분배는 노동소득의 분배보다 더욱 고도로 특정계층에 집중되어 있었다.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에 와서도 인구의 가난한 절반은 어떠한 자본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전체 부의 5퍼센트 정도를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상위 10퍼센트는 전체 부의 60~90퍼센트를 소유해왔다. 또한 양차 대전 이후 등장한 세습중산층의 경우 전체 부의 4분의 1내지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다. 세습중산층의 등장으로 오늘날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하는 부의 비중은 양차 대전 이전과 비교해서 현저하게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90퍼센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체 부의 60퍼센트 정도를 상위 10퍼센트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의 집중이 여전히 극심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거 자본소유의 불평등이 매우 극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피케티는 과거 사회들이 공통적으로 극단적인 저성장 사회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과거 사회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지속적으로 현저하게 높은 사회였다(즉, r>g의 상황 중에서도 r-g의 값이 매우 컸다).



19세기 이전에는 모든 사회의 연간 성장률이 0.5~1.0퍼센트 정도로 매우 낮았다. 반면 연간 자본수익률은 일반적으로 4~5퍼센트 정도였다. 이러한 성장률과 자본수익률 간의 격찬느 매우 큰 것이었고 이는 과거에 축적된 부가 경제성장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본의 형태로 재축적되어왔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자본소유자는 자본으로부터 발생하는 연 4~5퍼센트의 수익을 기반으로 노동소득 없이도 매우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러한 부는 대물림 과정을 거쳐 상속자산이 되고 결국 상속자산이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결정짓는 강력한 요소가 됨을 의미한다.



또한 그 다시 자본소득이 국민소득의 4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으므로 그 중 4분의 1을 저축하면 저축률을 10퍼센트에 이르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본/소득 비율(β)은 저축률(s)과 성장률(g)의 비율에 따라 장기적으로 결정된다는 β=s/g의 법칙은 높은 저축률과 극도로 낮은 성장률로 인해 자본/소득 비율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상승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곧 자본이 고도로 집중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것이 과거의 사회에서 자본소유의 불평등이 왜 그토록 극심했는가에 대해 피케티가 제시하는 이유이다.



이후 20세기 후반에 세계 경제가 연간 3.5~4.0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임에 따라 자본수익률과 성장률 간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성장(특히 인구성장)이 둔화되면서 이 격차는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피케티는 진단한다. 그는 2050년에서 2100년 사이의 세계 경제성장률은 매년 약 1.5퍼센트가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r과 g의 격차는 산업혁명 당시와 맞먹는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파레토 균형을 내세우며 안정적인 불평등 상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레토 균형이란 모든 경제가 이 균형 밖으로 벗어날 유인이 없는 가장 합리적인 상태로서의 균형을 말한다. 따라서 어떠한 상태가 파레토 균형 상태라면 그 때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안정적이면서도 최적 합리성이 갖춰진 불평등이 된다. 



이에 대해서 피케티는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파레토의 사례는 사회과학에서 수학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한 결과 때때로 나타나는 영원한 안정성에 대한 강한 환상을 보여준단느 점에서 흥미롭다. (중략) 부의 분포가 파레토 분포라고 말한다면 사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상위 10퍼센트가 총소득의 20퍼센트를 조금 넘게 가져가는 경우나 50퍼센트를 가져가는 경우, 혹은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90퍼센트 이상을 소유하는 경우도 파레토 분포로 표현될 수 있다. 그 각각에 대해 우리는 파레토 분포를 다루지만 계수들은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 해당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현실들은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들은 파레토가 그랬던 것처럼 부의 분포가 마치 자연법칙처럼 견고하게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러한 견해는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불평등을 연구할 때 설명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분포의 안정성이 아니라 때때로 발생하는 커다란 변화다.“[각주:3]



피케티에 따르면 오늘날 자본소유의 불평등이 다시 이전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 것은 자본 및 자본소득에 부과된 세금 등과 같은 특정한 제도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자본수유의 불평등이 양차 대전 이전수준으로 회복되거나 이보다 더욱 높아지는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경고한다.



“이미 한 가지 결론은 꽤 분명하다. 현대적 성장의 특징이나 시정경제 법칙과 같은 어떤 것이 부의 불평등을 줄이고 조화로운 안정을 달성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다.”[각주:4]



7. 장기적으로 본 능력과 상속


18~19세기와 비교하여 오늘날 자본의 형태는 변화했다. 그러나 자본의 중요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최상위층에 집중되어있던 자본은 세습중산층이 등장함에 따라 그 집중도가 다소 완화되었지만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은 여전히 어떠한 자본도 소유하지 못한 채 남아있다.



더불어 자본집중구조의 변화는 일견 자본축적에서 상속의 역할보다 저축의 역할을 증대시킨 것으로 보인다. 상속은 과거의 자산축적이 현재의 자산축적에 기여하는 것임에 반해 저축은 현재의 개인의 능력을 통해 자산이 축적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점에서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자산축적의 형태는 상속보다도 저축일 것이다. 그러나 피케티에 의하면 자산축적에서의 저축의 역할은 우리의 생각만큼 극적으로 증대되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21세기에는 다시금 상속의 역할이 증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자본수익률이 현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경우, 거의 필연적으로 (과거에 축적된 자산의) 상속이 (현재 축적되는 자산인) 저축을 압도한다.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만, 이 방향으로 향한 힘들이 극도로 강력하다. 어떤 의미에서 부등식 r>g는 과거가 미래를 잡아 먹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을 하지 않고도 과거에 만들어진 자산이 노동을 통한 저축으로 만들어진 자산에 비해 자동적으로 더욱 빠르게 성정한다. 거의 필연적으로 이는 과거에 만들어진 불평등, 즉 상속을 더 지속적이고 과도하게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각주:5]



물론 r>g의 상황이 상속의 중요성을 증대시킨다 해도 21세기의 불평등 구조가 19세기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세습중산층의 증가와 슈퍼경영자의 부상, 극단적 능력주의의 대두가 불평등의 구조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7.1 상속은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보면 상속자산의 역사적 추이를 대략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상속액은 연간 총소득의 20~25퍼센트에 달했는데 이는 극도로 높은 수준이며 거의 모든 자본 총량에 해당된다고 피케티는 말한다. 즉 자본의 대부분이 저축이 아닌 상속에 의해 집중되고 축적되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1914~1945년의 양차 대전의 충격으로 인해 상속액은 극적으로 하락하였고 그 이후 꾸준히 회복세를 보였다.



“연간 상속액과 증여액은 자1차 세계대전의 충격 이후와 비교하여 그 전까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지만, 1910~1950년에 그 비율이 5~6배 하락했고(1950년 상속액은 국민소득의 고작 4~5퍼센트였다), 그 이후 1950~2010년에는 3~4배 상승했다(2010년 상속액은 국민소득의 15퍼센트를 차지했다)."[각주:6]



이러한 추세에 미루어볼 때 상속이 위축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지 예외적인 현상이었을 뿐이며 다시금 상속의 시대가 도래 할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7.2 상속액의 비중을 결정하는 세가지 힘 : by=μ×m×β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과 증여액의 비율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by=μ×m×β (by: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과 증여액의 비율, μ:사망자의 평균자산과 살아있는 개인들의 평균자산의 비율, β:자본/소득 비율)



μ와 m, β는 by를 결정하는 세 가지 힘으로 작용한다.



β(자본/소득 비율)이 클수록 by 또한 높아진다. 소득 대비 자본의 비율이 높을수록 국민소득 대비 소득액과 증여액의 비율 또한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m(사망률)이 높을수록 사회 전체적 수준의 상속액 또한 커질 것이므로 by와 정의 상관관계를 가질 것 또한 분명하다.



μ는 사망자의 평균자산과 살아있는 개인들의 평균자산 비율인데 이 또한 높을수록 by를 크게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피케티는 β가 도표상에서 U자 커브를 이루면서 양차 대전 충격 이후 다시금 18세기 주순으로 회복되는 경로에 있음을 보였다. β의 상승은 총소득에서의 상속액의 비중을 나타내는 by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반면 m은 기대수명이 상승함에 따라 점차 하락하였다. 이는 by를 감소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피케티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19세기 프랑스의 사망률은 성인인구 대비 약 2.2퍼센트였는데, 20세기 내내 꾸준히 하락하여 2000~2010년에는 1.1~1.2퍼센트로 한 세기 만에 거의 절반이나 하락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적 추이를 단선적으로 받아들여 상속자산이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실제로 현재 사망률은 다시금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사망률의 상승에는 인구구성상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이 점차 사망하고 있는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인구구성적 요인에 의해 시기별로 사망률이 변동할 수 있다. 이는 향후 사망률을 반등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에 따라 by또한 상승할 수 있다. 



또한 μ는 m과 함께 놓고 살펴볼 수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m을 감소시킨다. 더불어 개개인은 늘어난 수명으로 인해 더 긴 기간 동안 자산을 축적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다음 세대에 상속하게 될 자산의 크기가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곧 기대수명의 상승으로 인한 m의 하락이 μ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부를 축적하는 동기에서 상속의 동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상 μ의 증가는 by를 상승시키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7.3 21세기의 상속액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앞에서 살펴본 바처럼 양차 대전 충격으로 인해 급감했던 국민소득 대비 상속액의 비중은 다시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미래의 by를 결정짓는 주요한 변수는 자본과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제도의 형태일 것이다. 피케티에 따르면 만약 자본과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이 인하되거나 폐지되면 2010~2100년의 연간성장률은 1퍼센트 자본수익률은 5퍼센트가 될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는 r-g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자본집중도가 상승하여 by또한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직관적으로 볼 때 성장률이 높으면, 예를 들어 임금이 연 5퍼센트씩 상승하는 경우 젊은 세대가 부를 축적하기 쉬워지고 노년층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 임금상승률이 연 1~2퍼센트로 하락하면 필연적으로 노년층이 대부분의 이용 가능 자산을 취득할 것이고 그들의 부는 자본수익률에 의해 결정되는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각주:7]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보트랭이 냉소적으로 설명했던 상속이 노동보다 우세한 세계와, 노동이 상속보다 우세한 전후 수십 년 간의 매혹적인 세계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사회계층의 상위 1퍼센트는 상속자산에서 얻는 소득과 노동에서 얻는 소득이 거의 같을 것이라 여겨진다.”[각주:8]



7.4 부유한 사회에서의 극단적인 능력주의


지금까지 상속과 관련된 불평등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능력과 임금불평등 간의 관계는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임금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가장 열렬히 주장되는 것이 능력주의이다. 능력주의란 상식적으로 보유한 능력에 합당한 대가를 소득으로 받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능력에 따른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은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정당화될 여지가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나는 능력주의의 실체는 결코 그렇지 않다. 능력주의를 주창하는 최상위 노동소득자들은 자산소득자들이 능력 있는 노동소득자들보다 더 큰 소득을 올리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최상위 노동소득자들은 자신들도 자산소득자에 비견되는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이 사회정의상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능력주의는 그 본래의 의미가 변질된다. ‘능력에 따른 소득’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산소득을 능가하는 노동소득’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변질된 극단적 능력주의가 정당화되면 슈퍼경영자들과 자본소득자들 간에 경주가 벌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결국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극심한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과거 18~19세기에 비하여 자본과 자본소득 비중이 감소하였다고 해서 미래에서도 점차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을 가질 근거가 거의 없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극심한 자본소득 불평등과 노동소득 불평등을 동시에 직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각 국가 간 관세경쟁과 투자유치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자본과 자본소득에 세금이 인하되거나 폐지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자본수익률을 상승시켜 r-g를 크게 만들 것이다. 이에 따라 자본소득자들의 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수 있고 이에 대하여 최상위 노동소득자들이 자신들의 슈퍼연봉을 정당화하려 든다면 이는 불평등의 정도를 한층 심화시킬 수도 있다.  



8. 21세기의 자본 규제


8.1 자본에 대한 글로벌 누진세의 기초 : 사회적 국가


이제 피케티의 논의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불평등에 대한 이와같은 비관적인 전망에 대하여 피케티는 어떠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피케티의 처방은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자본에 대한 글로벌 누진세를 확립하는 것이다. 자본에 대한 글로벌 누진세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적절한 주체가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의 적절한 주체란 ‘사회적 국가’라고 피케티는 이야기한다.



글로벌 자본세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본에 의해 변두리로 쫓겨난 국가의 귀환이 필요하다. 사회적 국가는 부의 재분배에 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양상을 띠지만, 단순히 부자들의 부를 빈자에게 이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부의 재분배는 기본권 논리에 입각한 다각화된 재분배 형식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재분배는 민주적 토론과 합의에 입각하여 이뤄져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정의에 관한 논의를 민주적 합의에 의해 도출해내고 이에 따라 재분배 제도를 구체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기초를 바탕으로 깔고 있을 때 비로소 자본에 대한 글로벌 누진세를 도입할 수 있는 적절한 주체가 확립된다. 필요가 없이는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필요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정당화되며, 정당화된 필요에 대하여 재원을 마련할 공권력을 담지한 주체는 사회적 국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8.2 글로벌 누진세의 구체적 형태


1914~1945년 양차 대전의 충격에 의해 급감했던 β와 by가 다시 이전수준으로 회복하고 있는 와중에도 완전한 회복을 저지했던 주요한 요소는 바로 20세기에 도입된 누진세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금융자본의 자립화 경향으로 인해 누진세는 단계적으로 완화되거나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제약을 벗어던진 자본은 다시금 빠른 속도로 축적되고 있으며 일부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불평등에 심각한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자본에 대한 누진세가 확립되어야 하며 그것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글로벌 누진세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었다.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가 확립되고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보장된 금융투명성이 반드시 담보되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구조가 절실하다. ‘글로벌’ 자본세는 말 그대로 국제적 차원에서 확립될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자본에 대한 금융투명성은 민주적 투명성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사회정의와 국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민주적 합의에 기초해야만 본래의 의의를 관철시킬 수 있다. 또한 조세제도가 제대로 감시되기 위해서도 민주적 투명성은 반드시 확립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피케티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율체계는 무엇일까? 그는 이 점에 대해서 섣불리 확언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결국 민주적,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지식에 기반한 대략적인 추정치를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세율체계는 무엇일까? 늘 그렇듯이 이는 민주적으로 논의해야할 사안이며 이 질문에 답하는 데 적용할 수학 공식 같은 것은 없다. 아마도 20만 유로 이하의 순자산에 대해 0.1퍼센트, 20만 유로와 100만 유로 사이의 경우 0.5퍼센트의 세율이라면 적절할 것이다. (중략) 500만 유로 이상의 자산에 대한 세율이 2퍼센트로 제한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점에 주목하자. 유럽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에 대한 실질수익률이 6~7퍼센트 혹은 그 이상이기 때문에, 1억 유로 또는 10억 유로 이상의 자산에 2퍼센트가 훨씬 넘는 세율을 적용하여 과세한다고 해도 과도한 것은 아니다.”[각주:9]



9. 마치며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 논의가 유토피아적 이상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피케티도 자신의 처방이 유토피아적이라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처방이 유토피아적이라고 해서 무용하거나 공허한 것은 아니다. 이 처방은 기실 실현 이전에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도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



피케티의 처방은 앞으로 등장하게 될 불평등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들을 평가하는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또한 그의 처방이 국제적 협력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각 국가의 민족주의적, 보호주의적 행태에 대하여 경종을 울릴 수 있다. 현실 없는 이상은 공허할 뿐이지만 이상 없는 현실은 표류할 뿐이다. 이 점에서 피케티의 이상적 대안은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실현의 단계까지 고려하여 철저하게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좀 더 올바른 형태로 수정해나가야 할 것이다. 



  1.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397-398 [본문으로]
  2.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401 [본문으로]
  3.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440-441 [본문으로]
  4.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450 [본문으로]
  5.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452 [본문으로]
  6.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455 [본문으로]
  7.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478 [본문으로]
  8.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488 [본문으로]
  9.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pp.63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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