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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장 보드리야르 / 『소비의 사회』 / 문예출판사 / 제2부 소비의 이론-2

by Radimin_ 201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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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비의 이론을 위하여




■ ‘호모 이코노미쿠스’ 개념의 유효성 논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 그리고 지불능력한도 내에서 자신의 효용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구.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합리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경제학 이론의 대부분은 이 합리적 인간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합리적 인간의 욕구충족행위가 모여서 사회 전반의 경제를 구성한다고 하는 것, 미시경제의 완성과 거시경제로의 확장이라는 이 순서가 그들의 이론에 내재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개인으로부터 사회로 확장되어가는 이 순서가 과연 오늘날 소비사회에도 유효한가?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개인의 욕구충족에 앞서서 그들의 욕구가 이미 소비체계에 의해 상당한 가공을 당하기 때문이다. 



■ 역전된 순서


‘효용 극대화’와 ‘생산 합리화’ 사이의 변증법은 더이상 현대사회에 들어맞지 않는다. 구매자의 의사결정능력은 기업의 효과적인 수단들(광고, 마케팅 등)에 의해 조작된다. 기후와 토양에 걸맞는 작물을 심는 것이 아니라, 비료와 비닐하우스, 각종 농경기술을 이용해 토양 자체를 자신의 생산계획에 맞추는 것처럼, 기업은 소비자라는 토양을 적극적으로 가공하여 자신의 상품을 구매하게끔 유도한다. 이것이 바로 보드리야르가 갈브레이스의 개념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역전된 순서」이다.


“「고전적인 순서」의 경우 주도권은 소비자에게 있어 시장을 통해서 생산기업에게 영향을 주지만, 「역전된 순서」의 경우에는 반대로 생산기업이 시장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사회의 사고방식 및 욕구를 조종하고 주무른다.”[각주:1]



■ 개체 차원의 관점에서 체계 차원의 관점으로


보드리야르는 갈브레이스의 「역전된 순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의 개체중심적 시각에는 반대한다. 갈브레이스는 이 역전된 순서를 통해서 ‘개인’의 욕구가 조작되고 개인은 소외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소비사회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개체 차원이 아닌 체계 차원에 있다. 즉, 갈브레이스의 「욕구는 생산의 산물이다」라는 명제는 잘못되었으며 「욕구의 체계는 생산체계의 산물이다」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와 체계 차원에서 사유하게 되면 갈브레이스가 선언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에 대하여 다른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이에 따르면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은 생산과의 대결에서 합리적 인간이 소외당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합리적 인간이라는 개체중심적 사유의 무의미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은 것이다. 문제가 체계 차원에 존재하게 되면 개체중심적 사유는 그 힘을 잃는다. 따라서 개체 차원의 개념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더이상 이론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 사물의 유동성과 욕구의 유동성


보드리야르는 인간의 욕구가 자연발생적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 즉 욕구와 충족에 관한 합리주의적 견해에 반대한다.


한 개인이 특정 사물을 정확히 겨냥하여 욕구한다는 것은 소비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욕구는 사물의 체계를 따라 이리저리 미끄러진다고 본다. 이는 라캉의 욕망이론 중 시니피앙의 연쇄 논의와 매우 밀접하다.


이렇듯 욕망은 특정 사물을 지시하지 않고 끝없이 미끄러지므로 욕망의 충족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드리야르는 소비를 통해 인간의 욕구가 충족되며 긴장이 해소된다는 합리주의적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 향유의 부인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교환가치에 의거한 소비와 이 속에 존재하는 소유를 향한 갈망에는 목적이 없다. 


소비자는 표면적으로 어떤 대상을 갈망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러한 소비는 욕망의 우회적, 은유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소비는 특정 사물에 대한 갈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차이에 대한 갈망, 상대적 우월성에 대한 갈망, 차이표시기호에 대한 갈망에 가깝다. 


따라서 소비는 향유의 기능이 아니다. 소비는 차이체계를 생산하는 기능이다. 마찬가지로 소비는 개인적 기능이 아니라 집단적인 기능이다. 


이러한 논의를 따를 때 소비에 대한 기존의 견해는 부정된다. 즉 소비는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향유를 배제하는 것이다.


향유는 자율적이고 합목적적이며 자기목적에 의한 소비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소비사회에서의 소비는 자율적인 소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타인과의 차이에 의한 소비는 언제나 타율적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 개인의 상태는 타인과의 차이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변화한다. 그리고 이 차이관계의 변화가 소비자의 소비를 움직이므로 자율적인 소비라고 말할 수 없다.


소비사회의 욕구가 차이생산으로 향하고 있다면, 차이를 생산하는 소비는 결코 충족, 향유될 수 없다. 개인이 소비를 통해 타인과의 차이를 생산함으로써 일견 개인의 차이생산욕구는 충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개인이 차이를 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한 개인들 또한 소비를 통해 차이를 생산해낸다. 따라서 이 집단적인 차이생산과정에 의해 특정 개인의 차이생산욕구는 즉시 충족상태로부터 멀어진다. 특정 개인이 생산해낸 우월적 차이는 즉시 수많은 타자들의 차이생산에 의해 따라잡힐 뿐만 아니라 곧바로 뒤쳐져 열등한 것이 되어버린다.



■ 향유의 강제


이렇듯 향유와 행복을 배제하는 소비사회는 역설적으로 ‘행복’을 강제한다. 소비사회의 구성원은 향유의 의무마저 지고 있다. 그들에게 행복해지지 않을 권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소비사회가 강제하는 행복을 충실히 향유하는 자는 사회의 성실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존중받는다.


반면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 자, 소비를 통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자는 소비사회로부터 부적응자, 나태한 자, 불성실한 자로 낙인찍힌다.


마치 프로테스탄티즘이 세속적 성공을 구원받은 자의 증거로 꼽듯이, 소비의 향유는 소비사회의 성실한 구성원임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소비는 강제이고, 도덕이며, 제도이다.”[각주:2]




■ 새로운 생산력의 출현과 통제로서의 소비


소비사회에서 소비는 학습되고 훈련된다. 이는 소비에 성실히 임하는 자를 육성하는 사회화 과정이다.


이 훈련되고 강제된 소비는 이전까지 수행되는 강제된 생산보다 훨씬 교묘한 방식으로 체계의 목적에 인간을 동원한다.


소비는 평등, 욕구해방, 개성의 발달, 향유, 풍부함 등으로 포장되어 인간의 정신, 일상, 이데올로기 속에 스며든다. 그리고는 마치 소비가 인간 행복의 도구인 양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실은 인간 행복이라는 표어가 소비의 도구이며, 체계의 자기보존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인간의 행복, 평안, 안정과는 상관없이 체계가 소비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은 신용판매제도의 급속한 발달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개인의 현재소득, 현재의 지불능력 등은 체계의 입장에서 소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체계는 신용판매제도를 통해 불확실한 미래를 판매한다. 불확실한 미래의 소득을 현재로 끌어와서 소비를 종요하는 것은 소비를 권유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강제하는 것에 가깝다. 차이생산의 체계 속에서 개인은 부단히 소비의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구매력이 주어진다면 그 구매력이 안전한 것이든 위험한 것이든 소비자들은 그것을 소비에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무모하고 불확실한 소비의 부정적 결과에 대해선 오로지 개인이 책임질 뿐이다.



■ 소비사회와 개인주의의 모순


소비사회는 개인주의와 관련하여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소비사회가 필요로 하는 개인은 ‘소비자로서의 개인’이다. 따라서 소비사회는 이들을 육성하기 위해 개인주의를 조장해야만 한다.


그러나 진정한 개인주의가 상정하는 개인은 결코 ‘소비자로서의 개인’이 아닌 ‘온전한 개인’이다. 온전한 개인이란 스스로를 ‘개인’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고유성을 확신하는 개인이다. 개인이 느끼는 자신의 고유성에 대한 인식은 소비사회의 입장에서 큰 장애물이 된다. 왜냐하면 온전한 개인은 결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가치관을 저당잡히지 않고 오히려 개인 고유의 효용에 의해서만 소비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개인은 사물의 ‘사용가치’만을 고려하면서 소비를 행한다. 자신의 고유한 효용이 존재하는 이상 타자와의 차이관계는 그 고유성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환가치’에 기반을 둔 소비사회는 ‘소비자로서의 개인’을 육성하기 위해 개인주의를 조장해야하지만, 동시에 온전한 개인을 배제해야하므로 개인주의를 억눌러야 한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반쪽짜리에 불과한 ‘소비자로서의 개인’을 추구하는 소비사회는 개인주의의 관념에 대하여 모순을 배태할 수밖에 없다.



■ 개인을 원자화하는 소비사회의 전략


생산과 노동의 관계에서 고용자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착취는 억압과 욕구불만족을 강제하는 가시적인 형태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가시적인 억압에 대항하여 공통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연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비사회로 넘어오면서 억압은 더이상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심층적으로 작용한다. 개인의 욕구 자체를 조작하여 그들의 욕구 만족이 체계의 목적에 기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억압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것에서, 차이체계를 통해 개인들 상호간의 무의식적 적대감을 조장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원자화되며 연대는 불가능해진다.




3. 개성화 또는 최소한계차이




■ 자기 자신이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이다


수많은 상품광고에서 요동치고 있는 지난한 레퍼토리가 있다. 


  • ‘OO을 통해 당신의 개성을 표현하세요.’ 
  • ‘당신이 당신 자신이 될 수 있기 위해 OO은 언제나 노력합니다.’ 
  • ‘OO시리즈를 통해 개성 있는 당신이 되어보세요.’


개성은 오늘날 상품광고의 핵심 키워드이다.


  • 상품으로 표현되는 개성은 소비자의 개성인가 그 상품의 개성인가?
  • 대량생산 제품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 개성인가?
  • 개성은 표현될 때에만 개성인가?
  • 표현되기 전에는 그 소비자의 개성은 없는 것인가?


이 무의미한 순환논증과 공허한 문장들은 소비사회가 ‘개성’을 자기 입맛대로 전유하여 자기유지에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소비사회가 이야기하는 개성이란 알맹이가 사라져버린 껍데기와 같다. 


소비사회에서 개성은 이미 추방되었다. 그리고 껍데기만 남은 개성은 소비사회에 의해 소비의 증폭제로 이용될 뿐이다. 개성없는 사회에서 개성을 부르짖는 것, 그것은 바로 ‘개성화’이다.


‘개성’과 ‘개성화’는 공존할 수 없는 모순관계에 있다. 개성이 존재한다면 개성화는 무의미하다. 반대로 개성이 없다면 개성화의 가치와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소비사회가 주창하는 ‘개성’이란 이미 사라져버린 개성의 ‘흔적’에 불과하다. 그들이 개성을 말하는 것은 사실 ‘개성화’에 지나지 않는다. 



■ 개성과 개성화


소비사회의 개성화는 개성이 없는 상태에서 개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개성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개성을 ‘추구하는 것’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않고 멈춰버린다. 개성화는 이 ‘추구하는 것’, 개성을 확립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시그널, 이 시그널 자체에만 관심이 있다. 개성이 확립되는 것은 오히려 체계가 두려워하는 귀결이다. 체계가 원하는 것은 단지 개성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개성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하는 소비자 개인일 뿐이다.


소비사회의 ‘개성화’는 소비자 개인을 개성이 담보된 진정한 개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소비자를 특정 모델 속에 수렴하도록 만든다. 상품광고 속에 등장하는 연예인, 모델들의 모습에 가까워지도록 소비자를 종용하는 것, 스스로의 모습에서 벗어나 점차 모델을 닮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소비사회가 수행하는 ‘개성화’의 실체이다. 개성화는 비교 불가능한 고유성을 지닌 개인들에게 ‘개성의 모범’으로서 ‘특정 모델’을 자기 멋대로 지시해놓고는 모든 소비자가 이 모델을 향해 경주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특정 모델을 기준으로 ‘개성의 척도’를 설정하여 모델과의 유사성을 통해 소비자의 개성을 평가하고 위계화 하는 것, 이것이 소비사회의 ‘개성화’라고 하는 것이다.



■ 메타소비


메타소비란 소비에 대한 소비를 의미한다. 즉 소비를 소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비사회의 소비의 본질은 소비 그 자체보다는 메타소비에 있다. 소비사회에서의 메타소비는 소비에 대한 태도 소비의 성질, 행태, 방향을 소비하는 것이다. 


만약 과다소비가 보편화되면 과다소비는 더이상 상류계층의 특권적 성질을 상실한다. 따라서 상류계층은 일반에 대하여 자신들의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역으로 ‘과소소비적 행태’를 보인다. 이 과소소비적 행태가 바로 메타소비이다. 그들은 마치 과다소비의 천박성을 간파했다는 듯, 자신들은 그런 저차원적 욕구충족을 달관했다는 듯, 온갖 현학적인 관념들로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과다소비를 비웃는다. 이를 통해 과소소비를 상류계층의 특권적 행태로 승격시킨다. 


메타소비는 ‘차이화’를 그 본질로 삼고 있다.



  1.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pp.90 [본문으로]
  2.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pp.1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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