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글'에 대한 편식

Posted by 딤레인
2016. 8. 5. 07:30 사색

글에 대하여 사람들 사이에서는 특이한 태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글은 잘못된 글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이해하는데 실패해버린 대부분의 글들에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터무니없이 비논리적인 글이든, 별 내용이 없는데도 표현상의 문제로 인해 이해하는데 장애가 있는 글이든, 논리적인 정합성을 갖추고 있지만 복잡하고 심오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글이든 구분하지 않는다. 



실제로 오류가 있는 글에 대해서 그 오류가 쉽게 포착될 때는 비교적 논리적인 비판이 가해진다. 이러한 경우 그 글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 객관적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오류가 발견되지 않고 단지 심오하거나 복잡한 글에 대해서는 다른 성격의 비판이 가해진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글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추측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그 글을 합리적인 평가대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을 훼손시킨 그 글에 대하여 악의 넘치는 비난을 가한다. 



<진정 우수하고 천재적인 작가가 쓴 글이라면, 내가 그의 글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 그러므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 글은 분명 수준 떨어지는 작가가 쓴 글임에 틀림없다>



자신을 만문(萬文)의 척도라고 여기는 이 엄청난 자신감은 근거의 유무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사고(思考) 깊은 곳에 박혀있다. 



쉽게 쓴다는 것은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추구해야할 기본 덕목이다. 대중을 독자로 상정하는 작가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비판은 충분히 합리적인 비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대중을 혹은 대중만을 독자로 상정하지 않는 글에 대해서는 위의 비판은 잘못된 과녁을 겨냥하는 화살과 같다. 



분명 쓸데없이 복잡한 글을 쓰는 작가도 많다. 이러한 경우 그 작가의 글쓰기의 수준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내용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면서 장황하게 글을 쓰는 경우, 작가조차도 그 내용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글도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글에선 독자에게 친절한 표현들이 오히려 내용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모든 글들이 대중들의 문해력(文解力)를 고려하여 쓰이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글을 쓰는데 있어서 같은 내용을 담아내더라도 가능한 한 단순하고 명쾌한 표현을 써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담고자 하는 내용에 대하여 대중의 이해를 최우선으로 두고 쓰인 글이 존재하는 것처럼, 내용 그 자체의 심화를 최우선으로 하여 쓰인 글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글의 경우 어쩔 수 없이 글의 표현은 불친절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내용을 담기위하여 불친절한 표현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어떤 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할 때를 보면, 그 글에 생소한 ‘개념용어’들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개념용어의 의미를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하게 되면 그 글에 대한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작가의 입장에선 독자의 입장을 최대로 고려하여 개념용어에 대한 간단한 정의나, 주석, 다양한 예들을 삽입하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수단일 뿐이다. 이러한 수단들로는 독자들 간에 존재하는 개념지식의 갭을 충분히 커버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는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는 각자의 직업세계에서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타인에게 설명하려할 때에도 발생한다. 자신의 전문분야 지식을 백지상태의 입문자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한다고 상상해보자. 멍하게 듣고 있는 신입을 보면서 나중에는 ‘겪어보면 알아’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것이다)



작가들은 분량의 제한으로 인해 ‘개념용어’를 일일이 풀어쓸 수 없다. 따라서 작가들은 글의 가독성과 내용의 풍부함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할 경우가 많다. 만약 작가가 글의 가독성을 높이는 선택을 할 경우, 제약된 지면의 상당부분을 개념용어 설명에 할애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글의 흐름이 훼손되는 것과 담고자하는 내용이 축소되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작가들은 이러한 선택을 쉽사리 할 수 없다. 자칫하다간 충분히 대중적이지도 못하면서 내용마저 빈약한 글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글들은 대부분 그 주제에서부터 대중적인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므로, 차라리 독자의 범주를 제한하여 그들과 풍부한 내용을 교류하는 것이 작가의 입장에선 더욱 합리적일 수 있다. 



경제구조에는 생산자가 있고 유통자가 있다. 생산자는 자신의 생산물에 전념하고, 유통은 유통자가 담당하면 된다. 글과 지식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을 생산하고 심화시키는 자들이 있다면, 이를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여 소비하기 알맞게 유통시키는 자들이 있다. 쉬운 글에 대한 요구는 지식의 유통자들에게 합당한 요구이다. 생산자에게 배달의 지연을 따져봤자 아무 소용없다. 유통자의 업무를 생산자에게 따져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더불어 독자들의 의무도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에도 그것을 씹고 삼키고 소화시키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어떤 음식을 먹기도 전에 미리 짓이겨 곤죽을 만들면 그것이 과연 제 맛을 낼 수 있겠는가? 분별없이 쉬운 글만을 요구하는 것은 독자들이 선행해야할 기초적인 독서와 지적 소양습득까지 작가에게 대신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경제적이고 상업적인 ‘글의 시장’은 이러한 비상식마저도 상식으로 만들고 있지만, 이러한 글만을 편식하는 것은 결코 독자들에게 노력만큼의 가치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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