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식인적 태도에 대하여 – 지식에 가해지는 증오

Posted by 딤레인
2016. 8. 7. 07:30 사색

  • 지식은 도도하다. 최소한의 준비조차 갖추지 않은 자에게는 쉽사리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도화되고 심화된 지식일수록 지식은 더욱 엄밀한 기준으로 독자들을 가려낸다. 마치 어떤 사람들이 복잡하고 심오한 지식에 대하여 무용(無用)함의 낙인을 찍는 것처럼, 지식도 그들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치를 떨면서 거부한다. 산해진미를 맛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진미를 맛본 사람은 다시 한 번 그 맛을 음미하기위해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의 하나가 바로 지식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인간 이외의 어떤 생물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 이러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하여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공포감은 지식이 자신을 허락할 자들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입장권이다. 이러한 공포감이 없다고 해서 ‘틀린 것’이라 비난받거나 수준미달인 것은 아니다. 그저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고 ‘다른 것’일 뿐이다. 지식은 그들이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 관심이 없다.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지식에 대하여 비상식적인 비난을 가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삶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지식의 세계에 대하여 구태여 공연한 비난을 일삼는 것은, 사실 그 자신이 인간의 특권인 지식의 영역에 합당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절망감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 이러한 쓸데없는 열등감이 횡행하는 것은, 지식을 인간의 특권을 넘어선 계급적 특권으로 고착화시킨 사회구조의 탓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은 오히려 계급적 특권의식에 항상 적대적이다. 지식의 핵심인 비판적 정신은 고착된 것을 분쇄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천박하고 거짓된 지식은 인간의 비판정신을 마비시키고 자신을 계급적으로 특권화 시킨다. 이점에 있어서 진정한 지식은 언제나 거짓된 지식을 분쇄하려 하면서 지식세계로의 접근이 차단된 자들의 편에 선다. 



  • 때문에 대중들의 반지식인적 태도는 반은 타당하고 반은 부당하다. 

거짓된 지식으로부터 발생하는 계급적 억압은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들이 갖게 된 반지식인적 태도는 거짓된 지식과 진정한 지식을 가리지 않고 지식 전반에 대하여 무차별폭격을 가한다. 이를 통해 거짓된 지식은 오히려 자신의 특권적 기반을 확고히 한다. 대중들이 반지식인적 태도를 내면화할수록 거짓된 지식은 자신을 힘 있는 자들의 수중에만 머물게 하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지적 비판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토양 위에서 거짓된 지식은 소위 힘 있는 자들의 도구로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진정한 지식은 이 거짓된 지식과 도매금으로 묶여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음과 동시에 권력과 거짓된 지식으로부터의 폭력에도 노출된다. 



  • 진정한 지식이 대중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대중의 눈과 귀를 장악하고 있는 미디어와 협력해야만 한다. 

그러나 미디어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에 종속되어 있어 자율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진정한 지식이 미디어의 힘을 빌리려면 미디어가 가하는 시청률 논리와 검열을 피할 수 없다. 이처럼 지식은 오늘날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 내몰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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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리한 현실 속에서 진정한 지식에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답은 보이지 않는다. 지식이 인류와 더불어 묵묵하게 자신을 축적시켜온 지난 수천 년의 행보와 마찬가지로, 그저 담담히 사유와 비판을 지속해나가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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