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감상] 발터 벤야민 /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 길

Posted by 딤레인
2016. 8. 11. 07:00 독서/학술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와 「사유이미지」[각주:1]



이 책은 벤야민의 인식론적 방법론에 따라 세계와 사물,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아포리즘 형식의 단상들과 인식의 파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벤야민은 이성에 기반한 인식론적 틀인 개념분류에 입각한 사유가 온전한 세계인식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벤야민은 주체가 객체를 관찰하고 개념적으로 분류하여 관념적 체계 속에 세계를 가두는 형식보다는 미메시스적 사유와 인식을 중시하였다. 



미메시스적 인식이란 주체와 객체의 분류를 넘어서서 직접 그 대상과 동화되어 신경감응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거리를 두고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현상에 사유를 밀착시키는 형식이며, 나아가 사물의 꿈의 층위에 침투해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사용하여 날카롭고 민감한 감각을 통해 사물과 조응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도취의 형식으로 사물을 경험하는 것이 벤야민이 말하는 미메시스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근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교육의 형태가 이 미메시스적 교류와 소통을 차단하고 왜곡한다고 진단한다. 현대 교육이 갖고 있는 소외, 물화, 합리화, 휴머니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이 주체와 객체의 이항대립적 사유구조를 사람들에게 체화시킴으로써 삶에서의 풍부한 도취적 경험과 소통을 막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미와 인식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약하여 인간의 사유와 경험을 협소하게 만든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을 기반으로 벤야민은 이 책에서 미메시스적 태도에 입각한 세계 인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글은 아포리즘의 형식을 띠고 있어서 각각의 단상들 간에 체계적인 관련성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의 사유가 합리성에 기반한 체계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 책의 구성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기 한층 용이하다. 



벤야민은 인식행위 이전에 선험적으로 구성되는 이성적 체계의 틀 내에 세계를 인위적으로 분류하여 끼워맞추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사물에 대한 동화와 도취의 형식을 통해 얻어낸 날카롭고 감각적인 인식의 파편들을 모아 그 파편들로 하여금 사후적으로 총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이성적 체계화의 폭력으로부터 사물과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으며, 더욱 풍부한 방식으로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미메시스적 태도는 합리적 이데올로기 교육의 영향을 받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서 더욱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특이하게도 아이들에게는 뭔가를 만드는 작업장을 찾아가는 성향이 있다. 아이들은 건축, 정원일 혹은 가사일, 재단이나 목공일에서 생기는 폐기물에 끌린다. 바로 이 폐기물에서 아이들은 사물의 세계가 바로 자신들을 향해,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보여주는 얼굴을 알아본다.”[각주:2]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에 수록된 단상 중 하나인 <확대사진들>에서 아이가 어떻게 세계와 미메시스적으로 동화하는 지를 보여준다.



그는 「일방통행로」와 「사유이미지」에서 세상을 날것으로 바라보는 눈을 그 자신의 시선으로 직접 보여준다.



벤야민이 「일방통행로」에서 미메시스적 시선으로 인식한 세상의 파편들을 모아놓았다면, 「사유이미지」에서는 이러한 시선이 내면으로 향한다. 이를 통해 벤야민 본격적으로 세상과 내면의 긴밀한 신경감응의 방식을 보여준다. 



이 책을 접근할 때, 체계적이고 개념화된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을 완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체계적인 개념이나 지식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미메시스적 태도와 사물과의 동화가 어떻게 풍부한 인식과 사유를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접근할 땐, 무언가를 알고자 하기보다는 느끼고자 하는 것이 더욱 올바른 태도이다. 벤야민의 시선을 따라 그가 묘사하는 사물에 대해 상상하고 동화되어보고 도취되어보는 과정을 밟다보면 어느새 신선하고 참신한 사유들이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신비한 경험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글을 접근할 땐 글이 독자에게 던져주는 감각의 물세례를 온몸으로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날카롭고 참신한 아포리즘들이 어느 순간 머리 위에 쏟아진 물세례처럼 독자에게 감각적 충격을 안겨준다. 이러한 충격들은 우산을 쓰거나 아예 물속에 침잠해버린 독자들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힘을 빼고 이성적, 합리적 무장을 풀어헤친 뒤 자신의 사유를 자유롭게 열어두고 이 책을 읽어보자. 그리고 옆에 작은 노트를 하나 준비한 뒤, 머릿속에 떠오르는 발상들을 간간히 메모해보자. 그리하면 이 책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미메시스적 인식이란 게 무엇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1. 발터 벤야민,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역,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길, (2007) [본문으로]
  2. 발터 벤야민,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역,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길, (2007), pp.81 [본문으로]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