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子)라는 인간과 여성(女性)이라는 유령 - 실체와 관념 사이의 증오의 변증법

Posted by 딤레인
2016. 8. 13. 07:00 사색

구체적 인간으로서의 여자 개개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문화 내에 선험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여성이란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여자들을 여성으로 보게 만든다. 



나는 여자와 여성을 구분한다. 여자가 사람(人)이라면 여성은 관념과 이미지(性)이다. 여성은 실체 없는 문화의 유령이며, 여자는 이 유령 앞에서 피흘리는 실체이자 희생양이다. 개개인의 여자에게서 여성이라는 문화의 유령을 떼어놓지 않으면, 여자는 여성에 의해 자신의 인간성과 인생을 송두리째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



문화에 의해 발명된 여성이란 이미지는 피학적인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을 넘어서 피학 그 자체이다.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실제 구체적 인간으로서의 여자 개인이 사회의 시선 앞에서 위험에 처해있을 때 더욱 뚜렷히 여자의 실재에 달라붙어 여자를 더욱 불리하게 만든다.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폭력이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 헤매는 유령이다. 이 유령은 자신의 피학적 성질을 만족시키고 강화시키기 위해 여자라는 실체에 달라붙어 모든 폭력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킨다. 



여성이라는 유령은 성별구분에 기인한 모든 종류의 증오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성적 구분을 배제한 상태에서 인간만을 조명할 경우 그 사람이 사회적 증오의 대상이 될 이유가 전혀 없을지라도, 그 사람이 일단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증오는 그 사람에게 달라붙은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따라 그 사람에게로 집중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사람이 실제 여자인지 남자인지 조차 여성이라는 유령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인할 수 없는 익명성의 공간에서 그 사람의 행태가 조금이라도 남녀갈등에서 여자를 옹호하거나, 여성이라는 이미지의 허위를 공격할 경우 그에게는 여성이라는 유령이 달라붙어 그를 ‘여자’ 혹은 ‘남자인 체 하는 여자’로 규정짓게 만든다. 이 유령에게 그가 실제로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이라는 유령은 그저 피학적이고 어리석고 연약하고 속물적이라는 자신의 성질 그 자체를 강화시키기 위해 사람의 관념을 파고들 뿐이다. 이것이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성별갈등에 기생하며 문화 내에서 살아남는 생존방식이다.  



여성이라는 유령이 증오를 끌어당기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사랑’이다. 여성을 향한 증오의 심층엔 거의 예외 없이 사랑에 대한 원한이 도사리고 있다.



사랑이 부숴질 때 남자의 증오는 여성에게로 향한다. 같은 상황에서 여자의 증오도 여성을 거쳐 구체적인 여자에게로 향한다. 사랑의 증오마저도 남성, 여성을 구분한다.



여성이라는 이미지 안엔 ‘사랑에서의 강자’라는 이미지가 내포되어있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사랑에 있어서 선택의 주체는 여성이라는 관념이 항존한다. 이것은 실제로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화적, 관념적으로 못박혀있는 뿌리 깊은 편견이다. 여성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편견의 덩어리인 것처럼 말이다(문명과 함께 발전해온 신화의 영역에서 사랑의 화신이 거의 예외 없이 여신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편견은 실제와는 거의 무관하다. 그것은 문화의 무의식에 선험적으로 트여져 있는 생각의 물길이다. 이 물길을 따라 사람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인도(引導)’당한다. 이에 따라 비극적으로 끝난 사랑의 관계엔 거의 언제나 여성의 잘못이 전제되어버린다. 이는 ‘사랑의 강자’인 여성이 사랑의 관계에서 언제나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선택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사랑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여성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여성은 가만히 있어도 행위 하는 주체가 된다. 여성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의 아우라가 남성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사랑의 영역에서 남성이라는 관념은 약자의 그늘 안에 숨어 자신은 여성의 영향력 앞에 한없이 무력한 존재라며 남성의 모든 행위를 합리화한다. 따라서 사랑의 영역에서의 강자인 여성은 자신의 힘을 조율하고 약자인 남성을 배려해야하기 때문에 언제나 한결같고 조신해야한다는 ‘강자에 대한 구속’을 강요당해온 것이다. 사랑이 잘못된 것은 강자인 여성이 자신의 힘을 남용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과는 달리 실제 구체적 삶 속에서 여자(人)들은 이러한 구속에 얽매여 사랑의 영역에서조차 약자로 전락해버렸다.



사랑의 좌절, 그리고 이 좌절을 안겨준 사랑의 강자로서의 여성. 이것은 거의 모든 성별갈등의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증오의 씨앗이다. 남녀갈등에서 여성을 향한 증오에 여자의 ‘외모’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여자의 외모는 그를 향한 증오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가중감경의 기준이 된다. 여자의 외모에 따라 그 여자를 향한 증오의 크기나 방향마저 뒤틀려버리는 현상을 우리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외모는 여성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약점인데, 만약 어떤 여자의 외모가 그 사회의 미적 기준에 완벽하게 합치되어 강력한 아우라를 풍기게 되면, 문화는 이 여자에 대하여 현실적인 모든 기대와 예상을 초월한 여신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이때부터는 이 여자에 대한 인간적 판단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 여자에게는 무언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추종관념이 형성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리에는 언제나 미묘한 모순이 잠재되어있다. 인간은 신에 대한 열렬한 찬양과 동시에 신의 철저한 타락을 바란다는 점이 그것이다. 신의 타락과 추락 만큼 인간의 카타르시스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도 드물다. 아름다운 여자의 이미지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 추락하게 되면 그때부터 이 여자에 대한 증오는 기존의 추종관념을 반전시키며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이때부터 그 여자의 외모에는 여성이라는 유령이 스며들어 온갖 성적인 증오가 집중된다. 이를 통해 그 여자는 보통의 인간이라면 경험하지 못할 정도의 완전하고 철저한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여성의 관념 속에 외모라는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외모가 사랑의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여성과 사랑이라는 관념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에 대한 원한감정이 여성(性)이라는 유령이 여자(人)에게 달라붙어 증오를 끌어 모으는 핵심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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