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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도서 리뷰 감상]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 청목

by Radimin_ 201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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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각주:1]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을 때면 언제나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관찰 가능한 장막 뒤에 보이지 않는 심연을 가지고 있다. 이 심연이란 이성적 논리법칙을 벗어난 영역으로 논리적으로는 양립 불가능한 수많은 모순들이 몰아치는 공간이다. 한 인간의 심연이 이토록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지고 동시에 여러 빛깔을 발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다성성이 오직 텍스트만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천재성을 짐작케하는 부분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작품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분석은 피하려고 한다. 나의 부족한 글재주로 섣불리 이 작품에 대해 분석을 가했다간 자칫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인간 심연의 다면성을 제약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이 작품과 감응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나의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느껴왔던 나의 느낌을 은유적인 방식을 빌려 표현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을 맺고자 한다. 



§


그의 글에서는 둔중한 무게감으로 발밑에 짙게 깔리다가 마침내 온 몸을 에워싸버리는 안개와 같은 것이 피어오른다. 모호함과 흐릿함으로 덮어퍼리는 안개 속에서 인간은 공포를 느낀다. 그 공포는 점차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삶의 목적마저 흐릿해져 갈 것이라는 공포감이다. 


이 안개 속에서 자신이 내딛은 발이 왼발인지 오른발인지 조차 분간하지 못하게 되면,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감각과 사상에만 의존하여 세상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짙어져가는 안개는 그 감각조차 모호함 속에 가둬버리고 인간은 자신의 감각이 현실에 부응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절대적 혼란 속에 빠져버린다. 이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감각과 사상이 옳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뿐이다. 이러한 믿음은 자신과 세상이 일치할 것이라는 옅은 희망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견고하지 못하다. 안개가 주는 불안과 혼돈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에 대한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무수히 방황하도록 만든다. 


이 방황이야말로 인간의 모순 그 자체이다. 믿음에 의한 행동과 불신으로 인한 괴로운 발버둥은 각기 다른 차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충돌하며 인간을 더욱 깊은 혼돈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마치 물이 얼어붙음과 동시에 증발하는 것처럼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모순들이 한 인간에게서 하나의 행동, 하나의 사상으로 부단히 태어난다. 안개가 턱 끝까지 차오르게 되면 인간은 극도의 혼란과 공포 속에서 광기에 쉽사리 자신을 맡겨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 둔중한 안개가 결국 그의 전신을 완전히 감싸게 되면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안개가 피어오르기 전부터 지금의 이 절망의 나락에서까지 자신을 붙잡고 있는 그 존재, 극도의 혼돈과 공포 속에서도 결코 자신과 영원히 떨어져본 적 없는 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존재는 바로 지금 이 절망 속에서조차 자신의 발과 맞닿아있는 대지이다.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르네 데카르트의 절대명제조차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 혼돈 속에서도 ‘어머니 대지’만큼은 결코 의심할 수 없다. 이로부터 데카르트가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던 자기확실성이라는 결함을 니체의 생의 ‘대지’를 깨달음으로써 메우게 된다. 모순에 가득찬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결국 모든 것을 믿지 못하게 되는 극단의 허무주의는 대지를 인식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시야가 완전히 닫힌 뒤에야 비로소 보게 되는 삶의 가장 원초적 모습인 대지에서 그는 부활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대지가 그의 발과 맞닿고 있는 이상, 이 확실성을 토대로 그는 극도의 혼란과 허무주의에 맞설 수 있는 것이다. 


허무주의, 도그마, 맹목, 편집증적 강박, 이해 불가능한 광기ㅡ이 모든 것은 시대와 관념의 안개 속에서 한 인간이 공허감과 공포에 굴복하여 발생한 결과물이리라. 이럴 때 인간은 결코 머리로 사유해서는 안 된다. 그는 대지와 맞닿아있는 발바닥에서부터 사유해야한다. 안개가 덮치기 전부터 공포에 휩싸여버렸던 저 허공의 머리는 안개가 가장 먼저 덮쳐버린 상황 속에서도 대지라는 확실성을 붙들고 있던 발바닥에 비하면 한없이 불안하고 약하다. 머리가 망상 속에서 지옥을 발명하여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대기 전에, 사유를 발바닥으로 옮겨야만 한다.


이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를 비롯한 많은 인물들을 관통하고 있던 인간 심연의 은유적 표상이다. 

  1. 도스토예프스키, 김성호 역, 『죄와 벌』, 청목, (200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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