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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도서 리뷰 감상] 움베르트 에코 / 『장미의 이름』 / 열린책들

by Radimin_ 2016.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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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각주:1]



움베르트 에코는 사실 작가보다는 학자로서 유명하다. 세계적인 기호학의 대가인 에코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기호학에서 뿐만 아니라 철학, 역사, 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조예가 깊은 인물로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이 밖에도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까지 해독해낸다고 한다. 세계적인 석학인 그가 문학의 영역에서도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니 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장미의 이름』이라하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살인사건을 둘러싼 추리소설이다. 더불어 중세시대의 성직자 사회를 날카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소설이자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에코의 박학다식함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 이 작품은 단순히 추리소설로서의 스토리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성직자 사회의 모습들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치밀하게 재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기호학에 입각한 학문적 견해가 곳곳에 녹아있으니, 움베르트 에코의 기호학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 그것들을 꼼꼼히 찾아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의 기본 바탕은 추리소설이기에, 비록 작품에 녹아있는 다양한 지식들에 생소함을 느끼는 독자들이라도 스토리만을 따라가며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뼈대는 어떤 독자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상식적인 언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복잡한 성직자 사회의 분파들이나 그들의 관계, 또는 역사적 지식들에 관하여 구태여 크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작품을 읽으면서 일말의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는 독자라면 조금만 더 깊이 이 작품에 대하여 파고들고, 필요하다면 이 작품의 해설서를 읽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물론 작품을 읽기 전에 해설서부터 읽는 것은 금물이다).



이 작품은 고차원적 정신, 신성함과 성스러움의 향기가 물씬 풍길 것 같은 중세시대 성직자 사회의 기저에 깔린 탐욕, 광신, 야만, 권력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찬양하지만, 그들의 실태는 자신과 다른 생각, 자신과 다른 믿음, 다른 교리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온갖 추악한 말들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유린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파가 성직자 사회의 주도권을 잡을 수만 있다면 상대 교파를 이단으로 모는 것조차 서슴치 않으며, 필요하다면 유도심문과 중상모략, 잔혹한 고문을 통하여 상대 진영의 성직자들을 화형주에 매달아 불살라버리기도 한다. 대의를 위해서 작은 것은 희생당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상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참칭하며 신의 말씀으로 탈바꿈됨으로써, 대립하는 성직자들은 물론이고 성직 밖의 무고한 사람들마저 이 도그마의 희생양으로 끌려가 생명을 잃는다. 이 광신의 시대 속에서 에코는 가장 성스러운 공간인 수도원 안에서의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광신의 위험과 허위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이 작품에 깔려있는 요한의 묵시록과 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종말적 분위기는 바로 이 시대의 허위와 참상에서 배어나온 어두운 기운에 대한 거울이미지일 것이다.


  1. 움베르트 에코, 이윤기 역,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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