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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자료

민주주의에 대한 칼 슈미트의 입장과 하버마스의 입장

by Radimin_ 201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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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의 원칙을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절차로 이해하는 슈미트의 논의는 민주적 권력을 권력형성의 타당성이 아니라 민족의 사실성에 입각하여 이해한다. 사실성에 입각한 권력 이해라는 점에서 슈미트의 논의는 규범적 민주주의 모델이 아닌, 베커의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과 연결될 수 있다. 이점에서 하버마스의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 비판을 통해 슈미트의 이론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점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이제 하버마스의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 비판을 정리하면서, 민족자결에 입각한 민주주의 이해의 타당성 또한 같이 검토하도록 하겠다.



경험주의적 권력이론의 관점에서 정치권력의 규범적 특징(타당성의 차원)은 사회적 권력(사실성의 차원)으로 환원된다. 즉, 정치권력은 규범적 타당성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권력으로서 사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권력은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추구될 수 있는 좀 더 우세한 이익이 자신을 관철할 수 있는 능력 속에서 표현’되는 권력이다. 이는 사회적 권력이 상호합의에 입각하여 타당성을 얻는 권력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이익들 가운데 자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좀 더 우세한 능력이라는 사실성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 민족이라는 단위는 자연발생성이라는 사실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민속민족주의의 민족자결권은 규범적 민주주의와 양립이 불가능하다. 민족 개념이 가지고 있는 사실성의 특성으로 인해 민족자결에 대한 슈미트의 논의는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주의적 권력이론에 기반한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은 권력의 정당성을 질서의 안정성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은 이러한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게임규칙이 된다. 그렇다면 게임규칙으로 파악되는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은 과연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1.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은 ‘윤리적 주관주의’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모든 개인의 원칙적 평등성에서 출발하여, 각각의 개인들이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는)규범적 타당성을 산출하는 주체가 된다. 규범의 타당성을 초월적 원천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 속에서 찾는 것이다. 개인의 의지 속에서 형성된 각각의 규범적 타당성들은 주관적 근거들에 의존하며 객관적 평가를 거부한다. 따라서 상이한 타당성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된다. (이러한 상이한 타당성들이 다수결 원칙이라는 게임규칙을 통하여 안정성을 획득한다면, 그 결과 나타나는 정치체제가 설사 독재라 할지라도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게임규칙에 참여하게 되는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민주적 과정에 전적으로 수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게임규칙의 결과가 개인들의 이익 분포에 따라 도출되는 우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파가 인정한 규범을 왜 소수파들도 타당한 것으로 인정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질서의 안정성만을 그 답변으로 내놓기엔 무언가 부족해보인다.



-> 이것은 민족의 문제의 경우 더욱 큰 문제로 나타난다. 각 민족이 주장하는 타당성은 민족의 자결권이다. 이는 주관적 근거이며 각 민족의 민족자결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민족의 경우 각 민족이 주장하는 타당성이 민족‘자결권’이기 때문에, 게임규칙으로 파악되는 다수결 원리에 의해 도출되는 사회적 권력의 우연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 자결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수민족의 소수민족에 대한 지배적 위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족자결권에 입각한 민주정치의 이해는 안정성이라는 정당성의 척도마저 적용될 수 없다.



2. 이에 대해 베커는 ‘순치된 권력투쟁’이라는 이념을 통해 참여자들이 게임규칙을 수락한다고 주장한다. 우세한 세력이 소수파에게 던지는 내전가능성으로 인해 사회심리적 위압효과가 발생한다. 이 때 소수파에게도 다수파에 의해 인정된 규범을 수락하는 것이 내전의 발생가능성을 억제하고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수락가능한 해결책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설명도 불충분하다. 소수파가 이를 수락한다 하더라도, 수락행위로 인해 소수파가 다수의 전제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는 점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파가 소수파의 수락 이후에도 다수결 원칙에 복종한다는 보장 또한 없다.



-> 이러한 논증에 의해서도 민족의 자결권은 결국 다양한 민족을 포괄하는 민주정체와 안정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민족자결권 개념과 다민족 민주정치체제가 양립불가능한 점도 있거니와, 설사 양립된다 하더라도 민족에게 가해지는 다수파의 전제에 대한 위험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각 민족은 다수파가 갖게 될 민주적 권력을 인정할 수 없다.



3. 소수파의 보호를 위해 베커는 고전적 기본권에 호소한다. 다수파는 자신이 언제든지 소수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소수파의 이익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권력이 교체될 수 있는 조건은 경쟁하는 엘리트들이 유권자들을 여러 진영으로 분할하여, 유권자의 이익 보장을 약속함으로써 다수표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통해 충족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전적으로 엘리트들의 이해상황에만 맞춰져있다. 시민공중이 정당들의 이데올로기적 전리품 정도로만 간주되는 한, 민주적 과정에 대해 용인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시민들은 민주정치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정권을 이양 받은 세력이 더 나은 정치를 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4. 결론 


하버마스의 논증에 따라 경험적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이라는 게임규칙을 유지해야만 하는 충분한 근거를 가질 수 없다. 더불어 슈미트의 민족자결에 입각한 민주정치의 이해는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에 의해서도 그 안정성을 유지할 수 없고, 결국 각 민족의 철저한 분리로 귀결된다. 또한 각 민족이 각각의 민주적 정치체제룰 구축한다고 해도, 그들의 민주권력에 대한 이해가 타당성이 아닌 사실성에 기반하고 있는 한, 동질적 민족으로 구성된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도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 비판에서 제기된 각종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슈미트의 논의에 따라 정치적 의사형성이 동질적인 민족성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민족성은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Nation에 대하여 국민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경험적 민주주의 모델도 타당하지 않으며, Nation을 민족으로 이해하는 민족자결권에 입각한 민주주의 이해는 더욱 그 논증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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