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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프리드리히 니체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 책세상

by Radimin_ 2016.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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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례 -

1. 형이상학의 부정

2. 윤리와 도덕의 환상

3. 니체식 심리학적 서술

4. 이기주의의 재조명

5. 마치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각주:1]



니체의 이 책은 니체 특유의 잠언적 서술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 중 하나이다. 길고 짧은 수백여 개의 잠언과 금언들이 담겨있는 이 작품은 체계와 논리적 형식으로는 포착하거나 표현하기 힘든 점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이 작품이 체계와 형식을 따르지 않는 것은 니체가 공격하는 대상 중에 바로 체계와 형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른바 관습으로 표현되는, 우리가 따르는 논리적 체계와 형식에 대해서도 절대성이나 일반성, 보편성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또 다른 형식인 아포리즘을 빌어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1. 형이상학의 부정


이 작품에서 니체는 영원성, 보편적 정의나 진리, 선과 악, 형이상학 등을 부정하고 그러한 허구들이 인간의 정신 깊숙이 박혀버린 연원을 특유의 날카로운 비틀기와 심리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다. 니체의 주요 공격은 종교, 그 중에서도 절대신과 유일신을 상정하고 있는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데, 신이란 관념 하에 구축되어온 모든 절대성, 일반성, 보편성은 사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착각과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 니체의 핵심 주장이다. 



더불어 형이상학의 환각과 허영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적인 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제목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으로 지어진 것은 아닐까.



“그대들이 이상적인 것을 보는 곳에서 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본다”[각주:2]


“수정된 <누가복음> 18장 14절ㅡ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기를 원하는 것이다.”[각주:3]



2. 윤리와 도덕의 환상


니체의 눈에 비춰진 윤리와 도덕은 모두 관습의 산물일 뿐이다. 윤리와 도덕에 의해서 인간들은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을 습득하고 이를 절대적인 가치와 척도로 여기며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지만, 이는 단지 시대적인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이러한 착각은 인간의 의지와 생동력, 활기를 억압하고 고귀한 자유정신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니체는 도덕 그 자체를 완전히 없애야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도덕과 윤리는 사회의 질서를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니체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도덕의 환상, 도덕과 윤리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라고 여기는 이 환상의 위험을 니체는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인륜 안에서의 쾌감ㅡ쾌감의 도덕성의 근원에 대한 중요한 부분은 습관에서 생겨난다. 사람들은 익숙해진 일을 더 쉽게 더 잘하며 더 즐겨한다. 그들은 그때 쾌감을 느끼며 습관화된 것은 그 무엇을 보증한다는 것, 즉 유익하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 삶을 지속시켜주는 하나의 인륜은 새로운 것이며 아직 보증되지 못한 모든 시도와는 반대로 효과적이고 유익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따라서 인륜이란 쾌적한 것과 유익한 것의 결합체이며, 게다가 그것은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곧 자신의 인륜을 관철시키고 실행하기 위해 그 압력을 행사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그것은 이미 보증된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으로 구성되는 공동체는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인륜을 강요한다. 바로 여기에 잘못된 추리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인륜에서 쾌감을 느끼거나 또는 적어도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성취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륜은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오로지 그런 인륜 아래에서만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삶의 쾌감은 그런 인륜에서만 생겨나는 것처럼 보인다. 습관화된 것을 현존의 한 조건으로 보는 이런 해석은 윤리의 가장 사소하고 개별적인 것에까지 관철된다: 열등한 민족과 문화에서는 실제적인 인과성을 통찰하는 일이 극히 미흡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것이 동일한 과정을 거치는 것을 미신적인 공포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어렵고 힘들고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에서조차 겉으로 나타나는 최고의 유익성 때문에 인륜은 유지된다. 사람들은 그 정도의 안락이 다른 인륜에서도 똑같이 성립될 수 있으며 훨씬 더 높은 정도까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마 그들은 모든 인륜, 가장 힘든 인륜조차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편안하고 부드러워지며, 가장 엄격한 생활양식 역시 습관화되어 쾌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각주:4]



3. 니체식 심리학적 서술


형이상학과 진리에 대한 담론이 인류 정신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담론임에 반해, 니체는 생생한 인간 개개인의 활동과 심리에 대한 관찰을 기반으로 통찰을 이끌어낸다. 존재하지도 않는 관념과 허구인 거대한 형이상학에 짓눌려 인간 실체와 자유정신은 감춰지고 왜곡되어왔다. 따라서 니체는 형이상학을 거둬내고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활동과 심리, 활기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정신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형이상학에 대해서 니체는 원색적인 비난과 조소도 서슴지 않는다. 그의 거칠고 난폭한 비아냥거림은 수많은 종교와 기독교, 예술, 심지어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을 선정하는 데 있어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더라도 그것이 형이상학의 성질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는 한 니체는 그것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는다. 



4. 이기주의의 재조명


니체는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본성 중에 하나인 이기주의에 대해서 선과 악의 관념을 거둬내고자 시도한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은 사실 좋고 나쁨에 연유한 것이고, 좋고 나쁜 것의 판단 기준은 관습을 정립하기 시작한 최초의 지배층의 이기주의에 기인한다. 최초의 지배층의 입장에서 이로운 것은 좋은 것, 해로운 것은 나쁜 것이었으며 이것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여 지배를 한층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윤리와 도덕이란 관습으로 정착시켰던 것이다. 



사회에 통용되는 선한 행위는 흔히 이타주의적 행위로 표현되지만, 니체에 의하면 이타주의란 가면 쓴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을 파괴하고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사실 그 행위가 자멸을 초래할지언정 ‘자신이 추구하는 더 높은 가치에 이롭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행해진 것이지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이기주의를 배제한 채 행해지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이기주의에 기반한 것이며, 이에 대하여 선과 악의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지극히 관습적이고 일시적인 그 시대의 도덕과 윤리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니체는 도덕과 윤리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과 윤리에 대한 인간들의 착각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 착각에 갇혀있는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일반적, 보편적 가치에 합당한 선 안에서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여기엔 불완전한 자의, 그리고 압도적인 ‘관습의 타의’가 존재하고 있다. 니체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형이상학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을 통해서 자의의 환상을 깨고 진정한 자의를 깨울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의를 깨운 자가 바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모습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5. 마치며


이러한 주장을 모호하고 관념적인 논리적 주장으로만 펼친다면 니체 그 자신도 결국 형이상학적 철학에 종속되는 결과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니체는 인간의 활동과 심리, 그리고 사회를 하나하나 미시적으로 조명하고 조각난 금언의 형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한층 철저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논리적인 형식으로는 체계적인 윤곽을 잡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단 한 번의 독파만으로는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금언과 금언들 사이를 오가면서 각각의 금언들이 뿜어내는 통찰의 빛을 포착해내는 게 이 작품에 어울리는 독서방식이 아닐까 싶다. 



“현상과 물 자체ㅡ수천년 전부터 우리는 도덕적, 미학적, 종교적 요청과 맹목적인 애착, 정열 또는 경외감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았으며 비논리적인 사고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점차 이처럼 이상할 정도로 다채롭고, 끔찍하게 의미심장하고 감정이 넘치게 되었다. 세계가 색채를 띠게 된 것이다ㅡ그러나 색을 칠한 사람은 우리였던 것이다.”[각주:5]


  1. 프리드리히 니체, 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01) [본문으로]
  2. 프리드리히 니체, 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01), pp.464 [본문으로]
  3. 프리드리히 니체, 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01), pp.99 [본문으로]
  4. 프리드리히 니체, 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01), pp.107-108 [본문으로]
  5. 프리드리히 니체, 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01), pp.3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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