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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칼 폴라니Karl Polanyi / 『거대한 전환』 / 도서출판 길

by Radimin_ 2016.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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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1. 이중적 운동double movement

2. 사탄의 맷돌satanic mill

3. 자기조정 시장체제의 붕괴와 파시즘의 대두

4. 마치며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각주:1]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각주:2]



이 책은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와 수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대공황, 양차 대전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던 20세기 중반에 등장하였다. 이 책에서 폴라니는 자유주의 경제학에 의해 축조된 자기조정 시장체제가 인간 문명에 가져온 파멸적인 결과들 분석하고 있다. 



폴라니에 따르면 자기조정 시장체제는 그릇된 전제들을 기반으로 축조된 자유주의 경제학의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조정 시장체제는 분명 인류에게 유례없는 풍요와 혁신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의 대가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철저한 파괴였다.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부와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욕망을 기반으로 형성된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하여 언제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상태로 나아간다. 비록 시장의 생리를 교란시키는 부정적 충격이 있다 하더라도 시장은 자기조정의 힘을 통해 균형을 회복하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부는 인간과 사회를 한층 풍요롭게 만든다. 따라서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원리이며, 이를 교란시키는 일체의 국가, 정치체제, 사회의 압력은 철저히 배제, 분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제는 시장경제체제에 관한 19세기적 편견에 불과하다고 폴라니는 말한다. 그는 산업혁명과 그 이전의 경제체제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의 논리적 허구성을 낱낱히 밝히고 있다.



“최근의 역사적, 인류학적 연구에서 나온 두드러진 발견은,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관계 속에 깊숙이 잠겨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 재화의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행동하여 지키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 사회적 권리, 사회적 자산이다. 인간이 물질적 재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목적들에 도움이 되는 만큼으로 한정된다.”[각주:3]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은 자기조정 시장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을 독단적으로 사회에 적용하였다. 금본위제를 통해 각 국의 화폐가치를 통일함으로써 화폐에 대한 국가의 조정능력을 분쇄하고, 인간의 노동이 산업체계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로이 거래되는 노동시장을 창조하였으며, 토지에는 울타리가 세워지고 곡물과 가축이 아닌 지대가 자라나게 되었다.



이 결과 자기조정 시장체제에 순응한 각 국가의 부는 어마어마하게 쌓여갔으며, 새로운 기계와 새로운 제도, 새로운 상품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놀라운 결과물 앞에서 고전파 경제학자들과 당시 유럽의 국가들은 점차 자기조정 시장체제에 대한 이론을 신앙화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와 지식인들이 이 압도적인 결과물에 주목하는 사이, 사회의 연대와 공동체 문화는 뿌리부터 썩어가고 있었으며, 인간의 삶은 가루가 되어 시장의 급물살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인간의 삶을 근본부터 파괴하기 시작한 이러한 현상들은 일찍이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관찰되었으나, 자기조정 시장의 교리에 경도된 지식인들은 이를 단지 시장에 가해지는 ‘일시적이고 덧없는’ 충격쯤으로 여겼다. 이러한 현상들은 자기조정 시장의 교리에 따라 점차 균형을 회복할 것이기에 그들은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자유주의적 원칙들을 밀고나갔다. 



“그 원리가 비록 어떤 부분에서 실패를 겪게 되었고 또 그 실패가 제아무리 극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그 원리 자체가 권위의 파산을 겪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원리가 부분적으로 빛을 잃어버리게 되면 오히려 그 원리에 대한 사람들의 신앙이 더욱 강화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는 항상 자유방임 원리의 신봉자들이 앞으로 나서서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자유방임 원리에 원인과 비난을 돌리는 모든 어려움들은 사실 자유방임의 여러 원리들을 완전하게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각주:4]



그들의 입장에서 사회란 자유주의 원칙에 기반한 경제체제를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봉사해야하는 일종의 부차적 요소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회와 경제를 분리하여 사고한다.



그러나 폴라니에 의하면 경제란 사회와 구분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는 사회에 ‘묻어있는 것’이며 사회의 수많은 단면 중 하나이기에 이 둘의 분리를 전제하고 있는 고전파 경제학은 근본 전제에 이미 오류를 배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의 입장에 따르면 사회에서 경제를 분리하여 사회를 경제체제와 시장에 종속시키는 것은, 원래 일체를 이루던 것을 억지로 양분한 것이기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는 폴라니의 핵심적 개념 중 하나인 ‘이중적 운동’으로 나타난다.



1. 이중적 운동double movement


자기조정 시장 체계는 스스로의 유지를 위하여 필연적으로 자신의 외연을 확장하는 경향이 있다. 기계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자본은 생산설비를 유치하기 위해 광대한 토지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토지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 부동산 시장 안에서 유통되어야 한다. 또한 산업자본은 기계를 돌리기 위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력을 충원할 수 있는 노동시장이 갖춰져야 한다. 더불어 산업자본은 생산된 상품을 유통하기 위하여 안정적인 화폐를 필요로 하는데, 이에 따라 화폐 또한 금을 매개로 하는 화폐시장 안에 포섭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정교한 기계들은 가격이 높기 때문에, 그것으로 많은 양의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다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 또 이러한 기계들로 생산하면서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생산된 재화의 판매 통로가 적절하게 확보되어야 하며, 또 기계에 투입할 원자재들이 부족하여 생산이 멈추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이러한 조건을 상인의 관점에서 다시 표현한다면, 기계의 작동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이 시장에서 판매되어야 한다.”[각주:5]



이렇듯 자기조정 시장은 자신의 외연을 확장하는 가운데, 실제 상품이 아닌 것들(토지, 노동, 화폐)을 상품화하여 시장 내부로 흡수한다. 이를 통해 시장의 외연은 점차 확장된다. 그러나 토지, 노동, 화폐는 근본적으로 상품일 수 없다. 토지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삶의 터전이며, 노동은 인간 그 자체이다. 더불어 화폐는 하나의 사회 공동체 내에서 인정되고 공인된 구매력이다. 경제가 사회에 묻어 들어가 있는 사회의 한 단면인 것처럼, 이 세 요소 역시 본질적으로는 사회의 각 단면들이다. 이러한 제요소들을 상품으로 여기는 것은 명백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조정 시장은 이러한 허구적 상품화를 밀어붙임으로써 자유주의적 경제체제로 향하는 하나의 운동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운동 과정에서 사회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이자 인간 삶의 터전이었던 토지는 이러한 사회적 성질을 잃어버리고 지주에 의해 ‘소유’된다. 이에 따라 토지와 더불어 살던 사람들은 토지 밖으로 내쫓기며, 토지가 품고 있던 자연의 모습은 정해진 용도에 의해 가공된다.  



노동시장이 생겨남에 따라, 원래부터 일체였던 인간과 인간의 행위인 노동은 서로 분리되어 소유주가 양분되어버린다. 고용된 인간은 자신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고, 그의 노동과 노동의 결과물은 고용주의 소유가 된다. 자신의 행위 즉, 노동을 노동시장에 저당 잡힌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소유하게 된 고용주의 의도에 따라 일신에 대한 자유를 제약 당한다.



화폐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구매력에서 금을 매개로 거래되는 상품이 되어버림으로써 사회의 통제력에서 벗어난다. 이를 통해 화폐는 대외무역의 흐름에 따라 각 국을 자유로의 넘나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대외무역조건의 변화에 따라 일국의 화폐가 타국으로 과도하게 유출되면 그 사회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절대량이 줄어들어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그 사회의 산업자본의 이윤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인원감축 압력이 발생하여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한다. 그러나 사회는 화폐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조정할 능력이 없다. 사회는 오로지 금본위제에 내재한 자기조정 시장의 균형회복 메커니즘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상품가격 하락은 유리한 무역조건이 되어 수출이 증가함으로써 다시금 화폐가 유입된다. 이를 통해 시장 균형은 회복된다. 그러나 이 침체와 회복의 과정에서 산업자본과 노동자는 각각 이윤감소와 실업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다. 공장은 파산하고, 실업자들은 굶어죽으며, 사회의 안정성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이것은 시장이 자기조정적인 것과는 반대로 빠르게 되돌릴 수 없거나 아예 불가역적인 상처가 된다.



“그 전의 경제 체제가 이러한 체제로 넘어가는 것은 너무나 완전한 환골탈태의 과정이어서, 성장이나 발전처럼 연속성을 포함하는 용어들로 표현할 수 있는 변화가 아니라 번데기가 하루아침에 나비로 변해버리는 과정과 더욱 닮아 있다. 한 예로 상인 겸 생산자의 여러 판매 활동들을 그의 구매 활동과 비교해보라. 그가 판매하는 것들은 오직 인간이 만들어낸 것뿐이며,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구입하는 이가 나타나든 나타나지 않든 그것에 사회의 골간 조직까지 영향을 반드시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가 구매하는 것은 각종 원자재들과 노동인데, 이는 다름 아닌 자연과 인간이다. 기계에 의한 생산이 상업 사회에 일어나면, 현실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적, 자연적 내용물이 상품의 형상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실로 엄청난 변화가 벌어진다. 기괴하게 들리겠지만 다음의 결론을 피할 도리가 없으며, 이를 완곡히 말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이러한 장치들은 심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인간의 상호 관계가 마디마디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이 삶을 영위할 자연환경도 반드시 쑥밭이 될 수밖에 없음이 명명백백하다는 것이다.”[각주:6]



이러한 타격에 대하여 사회는 시장으로부터의 위험으로부터 안정성을 지키기 위하여 보호주의적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산업자본가들은 타국의 상품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하며, 노동자들은 임금삭감과 해고에 대항하여 집단행위를 결성한다. 삶이 곤궁해진 사회구성원들은 정부에 대하여 각종 생활보장 정책을 입안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유주의적 운동과는 배척되며,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자기조정 시장체계의 원리를 훼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경제가 애초에 일체인 이상 시장의 과도한 확장은 반드시 사회의 보호주의적 운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두 운동의 충돌이 자기조정 시장체계를 무너뜨리는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폴라니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이중적 운동’의 개념이다.



이 ‘이중적 운동’은 인위적으로 사회와 경제를 분리시키고 사회를 경제체계 내에 종속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와 경제의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는 자기조정 시장체계는 ‘이중적 운동’이라는 모순되는 두 운동의 충돌로 인해 그 출발부터 붕괴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폴라니의 주장이다. 



2. 사탄의 맷돌satanic mill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에 의해 추앙된 자기조정 시장체계를 폴라니는 ‘사탄의 맷돌’에 비유한다. 자기조정 시장체계가 사회의 모든 요소를 자기 내부로 끌어들임으로써 사회는 파괴된다. 이 과정은 마치 고유의 형체를 지니고 있는 존재가 맷돌에 빨려들어가 가루로 분쇄되는 모습과 흡사하다. 사회는 시장 안에 빨려들어 감으로써 상품단위, 더 나아가 화폐단위로 쪼개지고 마는 것이다. 자기조정 시장체제를 지향하는 이상 자연과 인간도 이 ‘사탄의 맷돌’을 피할 수 없다. 



“산업혁명이라는 진보가 시작되자 금세 노동자들로 우글거리는 이러한 도시들이 영국 전역에 생겨나게 되었다. 농촌 사람들은 이제 인간의 형상을 잃을 정도로 망가진 빈민촌 거주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수많은 가족이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몰리게 되었다. 들판은 ‘사탄의 맷돌’의 아가리에서 쏟아져 나온 토사물, 즉 온갖 석탄 부스러기와 쓰레기 더미에 묻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사상과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보수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자본주의 지지자들, 사회주의자들 할 것 없이 한결같이 산업혁명에서의 사회상태는 그야말로 바닥 모를 인간 퇴락의 구렁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각주:7]


“이 혁명 자체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중략)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바로 시장경제의 확립이며 이러한 모든 변화들은 그저 이것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것들에 불과하다.”[각주:8]



3. 자기조정 시장체제의 붕괴와 파시즘의 대두


자기조정 시장체제가 사탄의 맷돌처럼 사회의 모든 부분을 집어삼키고, 사회는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반동적인 움직임을 취하는 이중적 운동이 나타난 결과, 자기조정시장은 결국 내부로부터 발생한 모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자기조정 시장체제를 복원시키기 위한 각국의 처절한 노력, 이러한 희망을 배반하듯 터져버린 1929년의 대공황,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들의 뼛속 깊이 새겨진 절망과 복수심, 국내 경제의 추락으로 인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각국 국민들의 분노, 상충하는 이데올로기들이 범람과 혼돈은 사회의 심층부와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파시즘적 열망을 부추겼다. 절망적인 현실을 타파하고자 자신들의 자유를 희생하고 거대한 국가조직과 파시즘에 동화됨으로써 자기조정 시장체제가 남긴 비참한 상황을 타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파시즘은 각국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각국에서 나타난 파시즘의 양상은 상이했다. 각국의 상황에 따라 파시즘은 자연히 소멸되기도 하고, 더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제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중 몇몇 국가에서는 파시즘이 결국 정권을 장악하고 그 사회의 정신을 집어삼켜버렸으니, 그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었다. 



“노동세력은 그 수를 무기로 삼아 의회에 참호를 파고 단단히 자리를 잡았으며, 자본가들은 산업을 자신들의 철옹성으로 건설하여 그 위에 올라앉아 온 나라를 호령했다. 이러한 자본가들에 맞서 인민들은 산업의 기존 형식들의 필요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각종 단체를 만들고 영업 활동에 인정사정없이 개입해 들어가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러면 산업의 거물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자유롭게 선출한 정부와 의회의 지배자들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도록 뒤흔들어놓는다. 그러면 이번에는 민주주의적 기관과 단체들이 만인의 생계가 달려있는 산업 체계 전체에 대해 전쟁을 일으킨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자 마침내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양쪽 모두가 완전히 마비될 위협이 현실화되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사람들은 나중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따져보지도 못한 채 그저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쉬운 길만 제공해준다면 어떤 이들에게라도 기꺼이 지도권을 떠안겨주기에 이르렀다. 파시즘이라는 해결책이 나타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각주:9]



4. 마치며


오늘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국가와 사회의 에토스를 장악하고 있다. 과거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체제와는 달리 화폐의 가치가 금과 같은 특정 현물에 고정하지 않고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안정성의 척도로 삼아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삼고 있으며, 유럽은 과거의 과오를 되새겨 유럽연합을 창설·유지하고 있다, 또한 각종 경제조약기구를 통해 일국을 넘어선 지역적 차원의 경제 수호 조치들을 취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과거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체제와 구별되지 않는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에 대한 신앙이 그것이다. 물론 오늘날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순진하게 시장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을 맹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바깥은 생각해내지 못한다. 이미 자신들이 축조해온 무수한 경제학 이론들이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의 잘못된 전제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가지고 있는 지엽적인 한계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이 창조해낸 자유시장의 원리 그 자체가 경제학으로부터 자립하여 실체를 획득하고 하나의 난폭한 생물처럼 전 지구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빛과 같은 속도로 전 세계를 넘나드는 금융투기자본은 자유시장의 원리가 실체화된 모습이다. 그들의 힘은 이미 국가단위의 정치체제를 뛰어넘었으며,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윤의 냄새만을 본능적으로 쫓으면서 거쳐 간 모든 곳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그들은 한 국가의 산업규모를 부풀림과 동시에 박살내버릴 수 있으며, 일개 국가의 환율과 이자율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국의 통화정책의 자율성은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는 사실상 과거 금본위제에 묶여 통화정책의 재량조차 거의 없었던 시절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열렬히, 그리고 더욱 더 밀고나가고자 하는 이데올로그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다. 



불확실성이 만연하여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워진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칼 폴라니의 이 책은 과거의 악령의 모습을 다시금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고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본문으로]
  2.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pp.94 [본문으로]
  3.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pp.184-185 [본문으로]
  4.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pp.398 [본문으로]
  5.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pp.177 [본문으로]
  6.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pp.178-179 [본문으로]
  7.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pp.174 [본문으로]
  8.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pp.176 [본문으로]
  9.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 길, (2009), pp.56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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