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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 문예출판사 -제2부-

by Radimin_ 2016.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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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1.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

  1.1 어머니의 사랑 

  1.2 아버지의 사랑

2. 사랑의 대상

  2.1 형제애

  2.2 모성애

  2.3 성애性愛




이전 포스팅에서는 ‘사랑은 기술이다’라고 하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에 대한 명제를 중심으로 그 의미를 밝히고, 더불어 인간실존론에 비추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찌하여 사랑을 갈구하는지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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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정리]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 문예출판사 -제1부-

[도서 리뷰 정리]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 문예출판사 -제3부-





사랑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넘어서 이제부터는 인간의 사랑이 어떠한 단계로 발전하는가를 심리학적 관점으로 서술하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사랑의 여러 형태들을 살펴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1.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


사랑의 문제는 인간의 성장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부분의 인간이 탄생하고 성장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부모의 사랑어린 보살핌 덕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탄생과 생존은 그야말로 사랑과 더불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성장과정 가운데 사랑은 어떠한 양상으로 인간의 생애와 결부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되겠다. 



사랑의 초기형태에 대해 논하자면 두말할 것 없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고찰해야만 한다. 인간의 탄생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생존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탄생과 생존과정은 어머니의 사랑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이 후 대략 열 살 정도에 이르게 되면 인간과 결부된 사랑의 성질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옮겨간다. 인간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초기의 탄생과 생존을 보호받고,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인간은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배워간다. 하지만 이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대체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과 결부된 사랑의 양식이 어머니의 사랑과 야버지의 사랑이라는 양자적 형태를 조화롭게 취함으로써 비로소 사랑은 초기의 유아적 형태를 벗어나 온전한 형태로 거듭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 어떤 특징,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가? 두 경우를 나눠서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1.1 어머니의 사랑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의 존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행해진다. 아이는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일련의 자연적 성질을 갖고 있다. 조건 없이 존재하며 조건 없이 인간을 품는 자연과 같이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자식을 품는다. 아이가 자신의 생존에 대하여 무력한 상태에 있는 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의 생존에 있어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더불어 어린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받는 사랑의 성질은 완전히 수동적이다. 어린아이는 무력하기에 보호를 필요로 한다.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하여 보호한다. 따라서 어린아이에게 있어 어머니의 사랑은 순전히 받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하여 어떠한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행하든 어머니의 사랑은 이미 그 행동 이전에 정해져있는 사랑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생존할 수밖에 없는 (대략 여섯 살 이전까지의)어린아이는 아직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대변되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은 비단 어린아이의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성숙한 어른의 경우에도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은 어느 정도 남아있고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우리의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가 안심하며 기댈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란다. 불안과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고 자신을 지켜줄 안락한 사랑은 비록 생존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갈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대한 자신의 힘과 능력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받기만하는 사랑은 불완전하게 느껴진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사랑‘하고’싶어 하고, 그 사랑을 통해 사랑하는 대상이 행복해지길 원한다. 이러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인간이 활기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임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사랑은 성장과정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더불어 아버지의 사랑을 배워가야만 하는 것이다. 



1.2 아버지의 사랑


인간이 성장하면서 완전한 무력상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면 점차 어머니와의 관계의 중요성은 퇴색되고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이가 자신을 닮아갈 때, 자신의 바람에 부응할 때 비로소 아이에게로 향한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자신의 자식을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이 둘의 차이점이 명백해진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이 태아시절부터 하나로 이어진 육체적 상태에서 시작한다. 이 점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어머니의 의식 이전에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자식이 자신의 자식이라는 ‘의식적 인식’ 이후에 출발한다. 자신의 자식이라는 인식 자체가 아버지의 사랑이 발현되는 조건이 되므로, 의식 이전부터 태아를 생육하고 출산하는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랑은 이러한 점에서 자연적인 사랑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자연적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사회와 관련되어 있다. 아버지의 사랑은 사회의 법률과 질서, 모험, 여행 등으로 표상될 수 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임과 더불어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사회적 동물임을 감안할 때, 아이가 성장을 통해 어느 정도 사회 속으로 뛰어들 힘을 획득하게 되면 이때부터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요해지게 된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아이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힘과 능력을 키워나가게 된다.



앞서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어느 순간에도 한 인간을 온전하게 품는다는 점에서 안락하고 따뜻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무조건적이기에 인간은 이러한 사랑에 대하여 아무런 노력도 할 수 없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소극적 측면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이다. 아이가 아버지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때, 아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랑은 보상과 처벌의 성격을 갖기에 안락한 사랑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은 통제가 가능하다. 아이가 어떠한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자신이 노력한 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랑은 복종과 처벌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극적 측면을 갖고 있지만, 이 사랑에 대한 인간의 노력이 유효하고 또한 통제가능하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측면도 아울러 갖고 있다.  



“어린이에 대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태도는 어린아이 자신의 욕구와 일치한다. 갓난아이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과 보호가 필요하다. 여섯 살 이후 어린아이에게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권위와 지도가 필요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어린아이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기능을 갖고 있고, 아버지는 이 어린아이가 태어난 특별한 사회가 던져주는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각주:1]



인간은 자신이 탄생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사랑의 최초의 형태들인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을 조화롭게 받아들여 내면화할 때 비로소 성숙한 인간이 된다. 만약 어머니의 사랑만이 비대해져 한 인간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상황이 나타난다면 인간은 이후 사랑의 문제에 관해 수많은 장해를 겪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는 그가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의 각 측면을 조화시키는데 실패했음을 의미하며, 그의 사랑에 대한 태도에서 한쪽의 특성이 과장되어 나타나 신경증적 형식으로 발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발생할 문제는 비단 이성간 애정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실존이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이상 이러한 분리상태는 인간의 사고와 행위 전반에 강한 영향을 행사하는데, 이러한 분리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의 조화의 실패로 인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면 그것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외부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해방되어 내면에 그 모습을 간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초자아(super-ego) 개념과는 달라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편입시킴으로써 내면에 그들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어머니다운 양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아버지다운 양심을 간직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숙한 사람은 어머니다운 양심과 아버지다운 양심이 서로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데도 이러한 두 양심을 모두 가지고 사랑한다. 그가 오로지 아버지다운 양심만을 간직한다면 그는 난폭하고 잔인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오로지 어머니다운 양심만을 간직한다면 그는 판단력을 잃기 쉽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발달을 방해하기 쉽다.”[각주:2]



2. 사랑의 대상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은 단지 대상과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특정 대상과 관계 맺는 것을 넘어서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이다. 이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비로소 사랑의 대상이 성립하는 것이며, 사랑이 향하는 대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들의 사랑이 발생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흔히 거론되는 성애(性愛)은 이러한 사랑의 한 형태일 뿐이다. 이와 구분될 수 있는 형제애, 모성애, 자기에,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 모두를 아울러 바라볼 때 진정한 사랑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각 형태들은 서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각각의 형태들에서도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조화될 수 있으며, 실제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성숙한 사랑의 능력을 갖출 수 있다.  



2.1 형제애


형제애는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즉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동등하기에 보편적인 동등성을 기반으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형태이다. 물론 각각의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하여 구별되는 독립적인 주체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이 독립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지만, 그 심층에는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동등성이 있다. 이 동등성에 기반하여 사랑하게 되면, 인간은 표면적인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랑이 한 단계 더 진일보하게 되면 우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 더 나아가 한 세계를 공유하는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2.2 모성애


모성애에 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모성애는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자 무조건적 긍정이다. 모성애는 무력한 어린아이의 생명을 보호하고 성장시킨다. 하지만 모성애가 단순히 아이를 보호하는 측면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단지 동물적인 본능 기제에 불과할 것이다. 모성애는 아이를 보호하고 생육시킴과 동시에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아이의 내면에 각인시킨다. 모성애는 아이에 대한 생명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함으로써, ‘삶은 좋은 것’이고 ‘탄생은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이렇듯 모성애의 기능은 한 인간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것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더불어 모성애는 형제애와는 구분된다. 형제애가 동등한 자와의 사랑인 반면에 모성애는 전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에 기인해있다. 아이는 전적으로 도움을 구하며 어머니는 도움을 준다. 



이러한 이타적이고 비이기적인 면모로 인해 모성애는 인류문화 속에서 줄곧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모든 사랑의 형태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단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행하는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모성애에도 인간 심리적인 기제가 녹아있다. 인간은 누구나 초월에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설사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운명에 종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기간 동안 이를 초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현재의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되고자 하는 것, 자기 자신의 창조자이자 세계의 창조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초월에의 욕구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창조물인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초월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이를 통해 자신을 초월하고자하듯 아이 또한 성장하고 자기 자신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아이의 초월에의 욕구는 결국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모성애의 비극적 측면이 있다. 성애(性愛)의 경우 사랑을 통해 분리에서 합일상태로 나아가지만, 모성애는 합일상태에서 분리상태로 나아가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아이와 분리될 수밖에 없는 아픔은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에 담긴 비극일 것이다. 



진정한 모성애는 이러한 분리 단계와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무력하고 연약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자신에게서 분리되어가는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진정으로 비이기적인 사랑이 아니고서는 행하기 어렵다. 분리된 아이조차 변함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는 그의 무조건적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아이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다. 이러한 어머니야말로 단순히 상냥한 어머니가 아니라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2.3 성애性愛


형제애와 모성애와는 대조적으로 성애는 본질적으로 배타적이다. 성애는 특정한 대상으로 향하는 사랑이자 특정한 대상과의 합일로 나아가는 사랑이다. 성애야말로 전인류를 통틀어 가장 주목받는 사랑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극성을 지닌다. 이는 인간의 실존이 분리상태에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자 원인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완성하기위해 취하는 수단이 사랑이라면, 성애야말로 직접적인 합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렬하고도 목적지향적인 사랑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성애에 수반되는 격정이 그토록 강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격정이 강렬할수록 인간의 사랑은 그 격정에 의해 왜곡되고 훼손되기 쉽다.



이성간의 사랑은 흔히 육체적 욕구로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어떤 사람이 연인과 정신적인 사랑으로 연결되어있다고 말한다 해도, 실은 그 정신적 사랑이 육체적 욕망충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경우 정신적 사랑은 육체적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쉽게 붕괴된다. 즉 이는 육체적 욕망이 정신적 사랑에 앞서 있는 형태이며, 이러한 관념 하에서 사랑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성적 욕망을 진정한 성애라고 착각하기 쉽다. 육체의 감각은 동일한 자극에 대하여 무뎌진다는 점, 즉 역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육체적 욕망이 우선하는 성애는 일시적인 합일의 도취만을 충족시킬 뿐 지속되지 못한다.  



“성적 욕망은 사랑에 의해 자극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의 불안에 의해, 정복하려는 또는 정복당하려는 소망에 의해, 허영심에 의해, 상처를 내고 심지어 파괴하려는 소망에 의해 자극된다. 성적 욕망은 강렬한 정서와 쉽게 뒤섞이고, 그것에 의해 쉽게 자극되며 사랑은 강렬한 정서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성적 욕망은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각주:3]



정신적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일시적이고도 강렬한 도취적 합일은 연인들을 서로 부끄럽게 만들고 심지어 서로에 대한 증오의 감정까지 싹트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단지 일시적으로만 나타나는 강렬한 합일의 경험이 정신적 사랑을 통한 합일로 묶여있지 못한 연인들에게 더욱 큰 분리의 감각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성적 결합의 욕구는 그 자체로 사랑을 일으키기보다는 이에 대한 착각을 야기한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은 성적 결합의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은 성적 결합의 소망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경우, 육체적 관계에는 탐욕이나 정복하려는 또는 정복당하려는 소망은 없고 부드러움이 섞일 뿐이다. 육체적으로 결합하려는 욕망이 사랑에 의해 자극되지 않는다면, 성애가 동시에 형제애가 아니라면, 이러한 욕망은 도취적이며 일시적인 합일 이외의 합일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각주:4]



더불어 성애의 독점욕에 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애는 모성애와 형제애와는 달리 특정 대상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대상만을 사랑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오히려 더욱 깊은 사랑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그것은 한 개인의 이기주의가 두 연인의 이기주의로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성애에는 분명 배타적 측면이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애는 특정 대상 안에 갇혀 그 안에 잠자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애는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삶과 몸담고 있는 세계, 그리고 무수한 타인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외향적인 힘이다. 성애가 이러한 힘을 갖는 이유는 성애를 통해 그 또는 그녀의 표면을 파고들어 그의 내면에서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게 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적 본질을 꿰뚫어본다는 것은 곧 그녀와 같은 무수한 인간들의 존재적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즉 진정한 성애는 형제애적 측면을 아울러 갖게 된다. 



“나는 나 자신을 오직 한 사람과만 충분하고 강렬하게 융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성애는 배타적이다.”[각주:5]



성애는 분명 특정한 대상에 대하여 특별한 감정을 수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의지적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성애가 단지 감정이라면 사랑에 대한 약속은 모두 허황된 거짓일 것이다. 약속은 그 자체가 의지의 표현이다. 사랑에 대한 약속은 단순히 사랑의 감정이 변치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감정은 변하기도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의지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의지란 단순한 감정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사랑의 약속은 설사 사랑에 수반되는 감정이 변한다 하더라도 단순한 감정보다 더 넓은 시각에서 사랑을 지켜내겠다는 의지이다. 감정이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감정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언젠가 다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에 대한 약속과 의지는 설사 설레는 감정이 미움으로 변하고 권태감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그러한 감정보다 더 깊은 곳에서 당신을 영원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인 사랑보다 훨씬 고귀하고 성숙한 사랑이다. 표면적인 감정보다 더 깊고 더욱 본질적인 영역에서 연인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할 때 비로소 그는 사랑에 대한 약속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연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설렘의 감정이 미움과 분노로 뒤덮였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 미움이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다. 감정의 변화는 오직 자신의 마음만을 할퀼 뿐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한 영혼은 그러한 감정에 의해 훨씬 심각하게 상처입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마주잡은 두 손을 통째로 절단하는 것, 껴안은 두 사람을 동시에 관통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자기 자신은 두 배로 상처 입는다.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자기와 연결된 또 한 명의 자기 자신도 같이 피를 흘린다. 감정의 영역에선 자기 자신만이 피해자일진 몰라도, 이보다 더 깊은 영역에서는 결국 자기 자신이 가해자가 된다. 이로써 인간은 가해자가 되어버린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독한 고통이지만, 한편으로는 진정한 사랑과 합일의 경험을 겪어봤다는 표지이기도 하다.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아픔을 알지 못한다. 더불어 사랑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자신의 격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은 그저 중심의 바깥에서의 공회전, 영원한 분리만을 경험할 뿐이다.



예상보다 포스팅의 분량이 길어지고 있다. 더불어 많은 생각도 하게 되는 듯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사랑의 다른 형태들인 자기애와 신에 대한 사랑, 사랑의 사회적 문제와 사랑의 실천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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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정리]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 문예출판사 -제1부-

[도서 리뷰 정리]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 문예출판사 -제3부-



  1.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06), pp.65 [본문으로]
  2.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06), pp.66-67 [본문으로]
  3.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06), pp.78-79 [본문으로]
  4.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06), pp.79 [본문으로]
  5.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06), pp.8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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