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도달가능한 것일까?

Posted by 딤레인
2016.04.18 20:28 사색

인간은 유기체적 존재이다. 유기체는 활동하는 것이 그 본성이며 무기물은 정지상태가 그 본성이다. 인간은 행복을 '느끼기' 위해 이상적 상태를 마음 속에 그려넣는데, 이 과정 속에 허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서의 허무란 이상적 상태와 행복이 연결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괴리감이다. 이 허무라는 괴리감은 인간이 행복의 형상을 무기물적 형상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통상 어떤 정적 상태를 행복의 형상으로 상정한다. 무엇이 된 상태, 무엇을 가진 상태 등은 정태적인 형상으로서 무기물적 형상에 해당한다. 유기체인 인간이 무기물적인 행복의 형상을 상정하고 이에 도달하고자 할 때 발생하는 이 본질적 괴리속에 이미 허무는 배태되어있다.



활동적 존재가 비활동적 상태를 욕망하는 것. 이것은 프로이트가 간파했듯이 죽음 충동(타나토스)에 다름 아닐 것이다. 타나토스는 인간의 욕동drive 중 하나로서 인간이 이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욕동은 무의식의 영역에 있으며, 오로지 어느 방향으로 밀고 나가려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나토스 자체가 '의식적으로' 욕망desire의 대상이 되는 것은 타나토스의 배제불가능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전술했듯이 죽음 충동은 정지상태, 평형상태, 죽음을 향한 욕동이지만 이것은 무의식의 욕동이며 에너지이다. 하지만 욕망은 의식이 대타자의 질서 내에서 형성하는 것으로서 에너지보다는 주체의 의지에 가깝다. 따라서 행복의 형상을 무기물적 형상으로 상정한다는 것은 곧 죽음으로 향하는 주체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생존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유기체인 인간이 죽음과 같은 정적상태를 욕망한다면, 이로부터 발생하는 모순이 인간에게 커다란 좌절 혹은 허무를 안겨주게 된다.



정적상태를 향하는 욕망들은 그 상태가 달성되자마자 욕망의 좌절로 되돌아온다. 그 정적상태에 도달하여도 그 시점에서의 인간은 여전히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상태에 멈춰서있지 않으며, 그 시점에서도 그의 사유는 지속되고 맥박이 맥동하며 

<또 다른 것을 욕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복의 유기체적 형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활동 그 자체라고 거칠게 정의해볼 수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라는 것이 바로 행복의 유기체적 형상의 원초적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친구와 마주앉아'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함께 놀면서 즐거운 것이며, 시험에 합격해서 뿌듯한 것이 아니라 그를통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뿌듯한 것이다. 종강을 하고 최고점수를 받았음에도 그 기쁨이 채 30분도 지속되지 못하는 것은 그 강의 안에서의 활동이 그 점수에 죽음처럼 정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 움직이고 있다, 욕망하고 있다는 활동 그 자체가 행복의 형상이 될때 비로소 유기체와 무기물의 괴리는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삶의 충동, 에로스이며 활동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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