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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 『자살론』 / 삼성출판사 -제2부-

by Radimin_ 201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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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목 차 -

2. 자살의 사회적 원인과 사회적 유형

  2.1 이기적 자살

  2.2 이타적 자살

  2.3 아노미성 자살 

3. 제 자살유형의 개인적 형태

  3.1 이기적 자살의 개인적 형태

  3.2 이타적 자살의 개인적 형태

  3.3 아노미성 자살의 개인적 형태

4. 사회현상으로서의 자살의 일반적 성격

5. 자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포스팅의 1부에서는 자살 현상이 비사회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주장에 대한 뒤르켐의 반박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반박을 통해 뒤르켐은 ‘자살은 사회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개진할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에 의하면 자살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 심리적 문제나 유기적, 물리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업실패나 가정불화,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등과 같은 개인적 사정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살을 실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를 결정적인 원인이라 할 수 없다. 개인에게 닥친 불행한 상황들이 반드시 인간을 자살로 내몰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살이 사회학적으로 분석되고 설명되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가 안정적으로 연결되는 인과성을 발견해야만 한다. 자살현상에 대하여 그러한 일반원인을 찾는 것이 뒤르켐의 자살론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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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르켐은 자살의 일반적 원인을 고찰하면서 자살의 유형을 크게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성 자살로 분류한다.



2. 자살의 사회적 원인과 사회적 유형


2.1 이기적 자살


뒤르켐에 따르면 인간은 개인적 자아(ego)와 더불어 사회적 자아를 지니고 있다. 이기적(egoistic) 자살이란 개인적 자아가 과도하게 팽창하여 사회적 자아를 희생시킴으로서 발생하는 자살이다. 이러한 자살의 경향은 개인을 통합하는 사회의 통합력에 따라 좌우된다. 



인간의 물리적 조건, 즉 신체와 본능은 철저히 개인의 생존을 위해 조직되어있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기체적 존재들이 갖고 있는 특성이다. 그러나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물리적 조건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이성과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이성과 의식은 초물리적(超物理的)인 성격을 지닌다. 이성과 의식은 물리적 조건을 뛰어넘어 무형의 정신적 실체인 사회를 지향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사회적 요구와 신념에 따라 삶의 목적을 설정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사회적 자아를 갖고 있다는 말의 의미이다.



인간이 사회로부터 유리되면 될수록 그는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의 사회적 자아가 현저하게 약화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생존에 아무런 제약이 없으며, 심지어 풍요로운 삶의 조건이 형성되어있다 하더라도, 사회로부터 유리된 인간은 자신의 행위와 노력으로부터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곧 공허감과 허무주의에 빠지고 마는데, 이는 인간의 존재양식이 사회적 자아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와 사회적 통합도 간의 불균형은 인간의 내면에 의기소침과 우울을 심어놓으며 이것은 곧 이기적 자살의 경향이 된다. 이러한 경향이 내재되면 사생활의 불행한 사건들은 단지 자살을 촉발하는 우발적인 원인이 된다. 자살의 표면적 원인은 사생활의 특정한 사건이지만, 사실상 그의 자살 경향을 형성한 일반적 원인은 사회적 자아의 약화인 것이다.



이기적 자살은 근대에 이르러 ‘개인’이란 관념이 발달하면서 만연하게 된 자살 유형이다. 개인의 자유가 확대됨에 따라 기존에 인간을 하나의 집단 안에 묶어두었던 종교, 가족, 정치사회의 통합력은 약화되었다. 기존의 사회집단유형들은 더 이상 근대적 개인들을 통합하는데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다. 이에 따라 근대적 개인을 통합할 새로운 형태의 사회집단이 필요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집단이 형성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회로부터 유리된 근대적 개인은 이기적 자살의 경향을 내포하게 된다.



2.2 이타적 자살


이타적 자살은 이기적 자살과는 달리 사회의 통합력이 지나지게 강력하여 개인적 자아를 약화시키는 데서 기인하는 자살이다. 이기적 자살은 개인적 자아가 비대해져 자기가 과도하게 팽창한 결과 발생하는 우울과 권태, 공허감에 의해 발생한다. 반면 이타적 자살은 자기부정에 의한 자살이다. 이타적 자살이 만연한 사회는 개인을 집어삼켜 그의 개인적 자아를 흡수하고 개인으로 하여금 사회를 위해 기꺼이 죽을 것을 강요한다.



이기적 자살이 근대 이후에 만연한 자살유형이라면 이타적 자살은 원시적 사회에서 만연하던 자살의 유형이다. 원시사회에서는 자살을 명예와 결부시키고 종교가 죽음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자연사를 불명예로 취급하거나, 주인 혹은 군주의 죽음에 대하여 그에게 종속되었던 사람들에게 자살을 명하는 형태도 존재했는데 이러한 사회에서 자살이란 사회로 부터 주어진 의무이다. 뒤르켐은 이러한 자살유형을 이타적 자살 중에서도 의무적·이타적(obligatory altruistic suicide)라고 명명한다. 



의무적·이타적 자살이 사회가 개인에게 죽음을 의무지우는 형태임에 반해 다른 형태의 이타적 자살도 존재한다. 사회가 그에게 자살을 명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개인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이타적 자살 형태가 그것이다. 이 경우 자살은 일종의 미덕이다. 자살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며, 이러한 자살은 사회적으로 찬양되고 존경받는다. 존경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행되는 자살의 형태를 뒤르켐은 자발적·이타적 자살이라고 명명한다. 더 나아가 특정 상황과 관계없이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자기의 삶을 완전히 버리는 것 자체를 목표로 설정하는 경우에는 극심한 이타적 자살이 된다.



이타적 자살은 비인격성이 극단으로 치달은 형태이다. 이기적 자살이나 이타적 자살 모두 인간의 불행과 우울로 인해 촉발되지만 근본원인이 갖는 방향성은 정반대이다. 이기적 자살의 경우 개체성이 무한대로 확장됨에 비해, 이타적 자살은 개체성을 외부의 대상, 즉 사회에 완전히 융합시킨다.



“이기주의자는 그가 세상에서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절실한 것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며 지나친 이타주의자의 슬픔은 반대로 개인이 그에게 전혀 절실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전자는 자신과 결부되는 아무런 목적을 발견할 수 없어, 자신이 무가치하고 목적이 없는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에 삶과 유리되며, 후자는 목표는 가지고 있지만, 그 목표가 삶의 외계에 존재하기 때문에 삶이 장애로밖에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삶을 버리게 된다.”[각주:1]



덧붙여 이타적 자살은 사회로부터 찬미되는 이유로 자살의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기도 한다. 편향된 도덕적 편견이 이러한 죽음을 자살이 아닌 희생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경시하는 자는 반드시 타인의 생과 인격도 경시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생명조차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 자에게 타인의 죽음이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를 지닐 것인가?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 이 모두 사회를 위해서, 집단을 위해서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숭고한 희생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면서도 그 가치를 타인을 위해 포기하는 경우에 한정되어야만 한다. 이것 이외에 자기부정이 내재된 희생은 사실상 희생이라 볼 수 없으며, 사회의 아가리에 자신을 밀어 넣는 이타적 자살에 불과한 것이다.



2.3 아노미성 자살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과 더불어 다른 형태의 자살 유형이 존재한다. 이기적 자살은 사회로부터 유리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목적을 상실한 형태이고, 이타적 자살은 개인적 자아가 사회에 의해 흡수되어 개체성이 상실된 형태임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구별하여 아노미성 자살은 인간의 무한한 욕구가 사회와 집단에 의해 통제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자살 유형이다. 



사회가 개인을 적정수준으로 통합하지 못하여 발생한다는 점에서 아노미성 자살은 이기적 자살과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이기적 자살이 우울과 권태, 공허감과 허무주의를 수반하는 형태라면, 아노미성 자살은 이상흥분, 분노 등의 격렬한 감정을 수반하는 형태이다.



인간은 여타 동물과는 다르게 유기체적 생존을 넘어선 초물리적(超物理的) 존재 양식을 아울러 가지고 있음을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존재 양식의 욕망은 물리적 세계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없다. 욕망은 그것이 성취되면 인간에게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성취되지 못하게 되면 그만큼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다. 무한히 발산하는 인간의 욕망은 현실세계의 제한과 맞물려 인간에게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은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적 실체에 의해 제약되어야만 한다. 인간 개개인의 의식을 뛰어넘는 정신적 실체란 다름 아닌 인간들이 한데 모여 형성한 사회이다. 사회란 특정한 물리적 형태가 없다는 점에서 정신적이며,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인간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실재하는 실체이다. 따라서 사회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제약하는 정신적 실체로 기능함으로써 욕망의 불만족으로 인한 고통을 경감시켜줄 필요가 있다.



만약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충분히 제약하지 못하게 되면 이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무한히 발산시키게 되고, 이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 한계가 없는 욕망은 만족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인간은 고통 속에서 좌절과 분노를 키워나가게 되고 이것이 자기 파괴를 통해 표출되면 아노미성 자살이 된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기적 자살은 주로 사색적, 지적 직업군에서 발생하며, 아노미성 자살은 주로 상업의 세계에서 발생한다.



이기적 자살은 불충분한 사회의 통합력에 의해 만성적이 되는데 반하여, 아노미성 자살은 극적인 변화에 의해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충격을 들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부정적인 경제적 충격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경제적 충격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불황이든 호황이든 경제적 충격은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는데,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일시적으로 사회적 균형이 깨지고 사회는 개인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된다. 이에 따라 개인의 욕망은 기존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이 아노미적 상황에서 아노미성 자살 경향이 강화된다. 더불어 결혼생활의 파국을 예로 들 수 있다. 결혼생활이 파국을 맞게 되면 가족사회에 일종의 아노미가 발생하며 이는 가족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의 아노미성 자살 경향을 강화시킨다.



이타적 자살은 오늘날 군대조직을 제외하면 현대 사회에선 드문 자살의 유형이다. 반면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성 자살은 현대 사회에 만연하는 자살의 유형이라 할 수 있다. 



3. 제 자살유형의 개인적 형태


이상의 논의로부터 뒤르켐이 분류한 사회적 요인을 갖는 자살의 유형을 원인론적으로 분석해보았다. 지금부터는 각각의 자살 유형들이 어떠한 형태로 개인에게 나타나는지를 정리해보도록 한다.



3.1 이기적 자살의 개인적 형태


이기적 자살의 특징은 우울과 권태에 있다. 이기적 자살자의 삶은 활기를 상실하고 이완되어 있다. 그는 외부세계로부터 후퇴하여 자기 내부로 스스로를 수렴시킨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와 자신 내부로 향하며 외부세계는 그에게 있어 무의미하다. 이러한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관찰과 자기성찰에 몰두하는데, 이러한 행위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킨다. 그의 자기성찰에 대한 집착과 노력은 개인적 자아의 목적과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노력은 실패하고 만다. 인간의 존재 양식은 개인적 자아와 더불어 사회적 자아와 결부되어있기 때문이다. 외부세계를 무의미의 영역으로 남겨둔 이상 그의 삶의 의미와 목적 또한 무의미로 가득 차게 된다. 뒤르켐은 이를 이기적 자살 중에서도 ‘스토아적 자살’이라고 명명한다.



“의식은 일정한 한계 이상으로 개체화하면, 그리고 인간이건 사물이건 타자로부터 자신을 너무나 지나치게 격리시키면, 더 이상 의식의 원천과 소통할 수 없게 되며, 의식이 통용될 대상조차도 찾지 못하게 된다. 자기 외부에서 허무를 만들게 되면 자기 내부에서도 허무가 일어나며 자신의 비참함 이외에는 내성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남아 있는 사고(思考)의 대상은 내적 허무와 그 결과로서의 우울밖에는 없다.”[각주:2]



“그들의 행동에의 염기(厭忌), 우울한 고독 등은 이기적 자살의 특성인 지나친 개체화의 결과들이다. 개인이 스스로 고립하는 것은 그와 타자를 연결시키고 있는 유대가 이완되거나 끊어졌기 때문이며, 그가 접촉하고 있는 부분에서의 사회가 충분히 통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각주:3]



반면 스토아적 자살과는 구별되는 ‘에피쿠로스적 자살’도 있다. 스토아적 자살이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여 파고드는 것과는 달리, 에피쿠로스적 자살은 사회로부터 유리된 상태에서 단순한 쾌락만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순간적이고 단순한 감각적 쾌락만을 쫓는 삶은 그 쾌락이 끝날 때 희의와 환멸, 무미건조함을 느낀다. 쾌락만이 유일한 행위의 동기인 이러한 유형은 사소한 자극에도 자신의 삶을 중단시킬 준비가 되어있다. 이러한 유형의 자살은 스토아적 자살에서 나타나는 병적인 만족조차 수반하지 않는다. 아무런 정열도 없는 사무적인 기분만이 수반될 뿐이다.



3.2 이타적 자살의 개인적 형태


이기적 자살이 우울과 권태, 환멸, 무미건조함을 수반한다면, 이타적 자살의 경우 맹렬한 감정과 엄숙한 확신감을 수반한다. 사회의 직접적인 명령과 찬미 속에서 그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버린다. 이러한 유형은 특히 원시사회의 원시인, 현대사회의 군대조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죽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이 목적에 자신을 종속시켜 자기 가치를 말소시키고 엄숙한 열정으로 죽음에 투신한다. 이들은 개체성에 기반하여 자신의 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눈으로 자신의 생을 평가한다. 때문에 이러한 자살 유형은 다른 유형에 비해 훨씬 광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맹목과 광포함이 이타적 자살에 수반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3.3 아노미성 자살의 개인적 형태


아노미성 자살은 이기적 자살과는 달리 열정을 수반한다. 하지만 이 열정의 성격은 이타적 자살의 열정과는 구분된다. 아노미성 자살에 수반되는 열정은 열광, 신념, 기만적인 미덕이 아니다. 여기서의 열정은 좌절과 이에 대한 분노에 가깝다. 이기적 자살자의 경우 그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공허한 것이다. 격렬한 갈등도 없고 흥분도 없다. 오직 공허감과 우울만이 그의 삶을 채우는 유일한 것이다. 이에 반해 아노미성 자살은 무제한적인 욕망과 한계에 부딪친 현실과의 괴리로 인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고통은 그에게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고 그의 행동은 폭력적으로 표출된다. 그의 폭력적 행위는 자신에게로 향할 때 자살이 되지만, 상황에 따라서 타인에게로 향할 수도 있으며 이 경우엔 타인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폭력행위의 대상은 우발적인 상황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베르테르(Werther)의 자살이나, 성공과 실패의 변동이 극심한 연예인의 자살 등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성 자살은 공히 무한의 병으로부터 기인한다.



“두 형태의 자살은 다 같이 무한의 병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기인한다. 전자의 경우는 내성적(內省的) 지성이 무절제하게 악화시킨 병이며, 후자의 경우는 감정이 너무 흥분하여서 모든 규제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전자에 있어서는 자신 속으로 후퇴함으로써 사고가 대상을 잃은 경우이고, 후자에 있어서는 한계를 모르는 열망이 목표를 잃은 경우이다. 전자는 꿈의 무한함 속에서, 그리고 후자는 욕망의 무한함 속에서 각각 길을 잃은 것이다.”[각주:4]



이 지점에서 우리는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한성의 절망은 유한성의 결핍에서 온다’고 하는 키에르케고르의 절망의 형식은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성 자살의 실존적 분리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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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르켐이 제시한 자살의 세 가지 유형들은 순수한 이념형이다. 이론적으로는 구별되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 이상의 유형이 혼합되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이기적-이타적 자살, 이기적-아노미적 자살, 이타적-아노미적 자살, 혹은 세 가지 유형이 동시에 공존하는 형태의 자살로 현실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유형의 혼합에 대해서는 본서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므로 직접 참고하길 바란다.



4. 사회현상으로서의 자살의 일반적 성격


뒤르켐은 자살의 제 유형에 대한 개인적 형태들을 분석한 후 이러한 유형은 공히 사회와 관련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기주의건, 이타주의건 어떤 종류의 아노미이건, 어떠한 도덕적 관념도 그것이 속한 사회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다.”[각주:5]



그에 의하면 사회가 변동하지 않는 한 자살률이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은 사회의 특성에 따라 사회의 자살생성적 경향이 일정한 정도를 가지기 때문이다. 만약 자살에 대하여 사회적 요인을 무시하고 비사회적 요인(개인의 정신질환, 유전적 요인, 우주적 요인, 모방)만을 강조할 경우, 각 사회 마다 특정 수준의 자살률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각 사회의 자살률이 매년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자살이 비사회적 요인에 기인한 현상이라면 사회적 특성과 관계없이 정신질환의 발병이나 인종이동, 기후 변화, 주변 지역의 자살 현상 등에 의해 자살률이 매년 변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살률은 사회적 변동이 없는 한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자살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요인에 의한 현상이라는 것이 뒤르켐의 주장이다. 



5. 자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자살의 원인과 유형, 개인적 형태들을 분석하였다. 따라서 이 논의의 마지막은 자살 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뒤르켐은 현대 사회에 이르러 자살 문제의 가장 주요한 원인 중에 하나를 사회의 통합력과 연대의 부재로 꼽았다. 근대에 이르러 개인주의 사상이 대두하면서 국가, 종교, 가족 등의 기존 사회집단들은 더 이상 충분한 통합의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과거 원시사회의 지나친 통합력으로 인해 이타적 자살이 주류를 이룬 것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느슨해진 통합력으로 인해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성 자살이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가는 적정수준의 사회통합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뒤르켐은 회사와 직업집단을 공적 지위로 끌어올려 잃어버린 사회적 연대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소 이상론적인 그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것이 사실이다. 과연 사적 회사, 직업집단이 공적 정신의 실체인 사회를 대신하여 현대인의 사회적 자아를 건강하게 바로세우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저서가 출판된 지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 사회를 돌이켜보건대, 사적 회사와 직업집단은 사회의 연대를 바로세우기는 커녕 오히려 국가의 공적 권위를 자본력으로 잠식해나가고, 살인적인 근무조건을 내세워 기존에 남아있던 최후의 가족집단까지 해체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란 인간의 정신을 초월하는 정신적 실체임을 주장했던 그가 사적 회사와 직업집단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희망을 품었다는 게 한편으로는 아이러니컬하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것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을 만큼 자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임에는 틀림없다.



사회가 인간의 정신의 상위에 존재하는 정신적 실체임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인간의 연대를 회복시킬 대체적 사회집단을 찾는데 있어서 우선 그 사회의 정신적 기초를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사적 이윤 추구를 본질로 삼고 있는 사적 회사와 직업집단은 그러한 대체적 사회집단이 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집단에 사회적 연대의 책임을 맡길 경우 이 집단은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속한 인간의 정신에 이윤지상적인 의식을 강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결과는 무한대의 경쟁과 적자생존, 인간의 부품화가 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자살이라는 공적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공적인 집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집단의 형태는 무엇보다도 자살의 위험에 내몰리고 있는 개인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공적 집단, 정치적 집단이어야 한다. 이점에서 성숙한 시민사회가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비록 시민사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어찌됐든 우리의 시민사회는 성숙해가고 있다. 각종 비리와 부조리, 시민들을 위협하는 공적인 위기들을 시민들이 돌파해 나갈 때 이러한 경험들은 시민사회의 역사 속에 축적되고 시민사회는 더욱 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사회가 충분히 성숙하여 사람들의 잃어버린 사회적 자아를 바로잡고 그들의 부풀고 허황된 욕망들을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되돌려놓을 때,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자살자의 비보를 듣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가 될 것이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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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임희섭 역, 『자살론』, 삼성출판사, (1990), pp.215 [본문으로]
  2.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임희섭 역, 『자살론』, 삼성출판사, (1990), pp.271 [본문으로]
  3.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임희섭 역, 『자살론』, 삼성출판사, (1990), pp.273 [본문으로]
  4.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임희섭 역, 『자살론』, 삼성출판사, (1990), pp.278 [본문으로]
  5.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임희섭 역, 『자살론』, 삼성출판사, (1990), pp.3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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