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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플라톤Plato / 『국가The Republic』 / 삼성출판사 -제3부-

by Radimin_ 2016.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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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목 차-

1. 정의에 관한 고찰

  1.1 폴레마르코스의 정의에 관한 주장과 소크라테스의 반박

  1.2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에 관한 주장과 소크라테스의 반박

    a. 첫 번째 모순

    b. 두 번째 모순

    c. 세 번째 모순

    d. 부정은 정의보다 지혜로운가?

    e. 부정은 정의보다 유능하고 강한가?

    f. 부정은 정의보다 이로운가?


- 제2부 목 차 -

2.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의문 – 정의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인가?

3. 정의로운 국가란 무엇인가

  3.1 국가의 기원와 정의  

  3.2 국가의 덕 – 지혜, 용기, 절제, 정의

4. 정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인가


- 제3부 목 차 -

5. 국가의 정치체제

  5.1 최선자 지배체제

  5.2 명예지배체제

  5.3 소수지배체제

  5.4 민주체제

  5.5 독재체제

6. 마치며




제2부까지의 정리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들은 가상의 국가를 상정하고 이로부터 연역하여 정의로운 국가와 정의로운 개인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생각해볼 때, 가상으로부터 연역하여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는 것은 곧 정의의 이데아를 토대로 구체적인 국가와 개인을 도출하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이데아로부터 연역된 것이기에 이러한 논의는 세밀하게 구체화시킨다 해도 결국은 이상형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이상적인 정의를 도출하였다면 다음의 논의는 이상적 정의와 현실에서 나타나는 실제의 정치체제를 대조하여 각 정치체제에 대해 평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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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에서는 이러한 논의에 초점을 둔다. 소크라테스가 구분한 현실세계의 다섯 가지 정치체제(최선자 지배체제, 명예지배체제, 소수지배체제, 민주체제, 독재체제)에 대하여 그 형태와 특성을 분석하고 각 체제가 얼마나 정의에 합당한 체제인지를 고찰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5. 국가의 정치체제



5.1 최선자 지배체제


최선자 지배체제는 소크라테스가 묘사한 정의로운 국가가 갖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국가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묘사하면서 이미 그러한 국가가 갖는 정치체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최선자 지배체제는 강건한 신체와 영혼의 덕을 두루 갖추고, 절학과 전쟁에 가장 뛰어난 방위자가 왕이 되어 국가를 지배하는 체제를 말한다. 여기서의 방위자란 우리가 모두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플라톤의 ‘철인왕’에 해당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국가가 갖추고 있는 계급체계를 크게 방위자, 보조자, 돈벌이꾼의 세 계급으로 나누고 있다. 방위자는 곧 지배자로서 철인왕을 의미하고 보조자는 군인을 의미하며 돈벌이꾼은 농민, 상인, 노동자 등의 재화 생산 및 유통 계급을 의미한다. 



최선자 지배체제에서는 철학과 전쟁에 능통한 철인왕이 지배행위를 통해 지혜, 용기, 절제를 제구실에 맞게 두루 통하게 하여 정의로운 국가의 덕을 확립하고, 각 계급들은 다른 영역에 간섭하지 않고 자신의 본성과 역할에 따라 제구실을 충실히 함으로써 정의로운 국가를 완성한다. 기초적인 교육은 공통이 되나 각 계급에 걸 맞는 차등적 교육이 실시되며, 평화 시와 전쟁 시를 아울러 남녀는 같은 일을 하고, 군인 계급에서는 모든 사유물이 공유물이 되고, 국가 전체를 통틀어 부인과 애들은 공유된다(물론 부인과 애들의 공유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최선자 지배체제는 다섯 가지 정치체제 중 가장 정의롭고 덕 있는 정치체제이며, 소크라테스가 길고 긴 논의를 통해 묘사한 정의로운 국가의 정치체제이다.



5.2 명예지배체제


명예지배체제는 스파르타적인 정치제제와 맞먹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즉 지혜, 용기, 절제, 정의가 두루 갖춰진 최선자 지배체제에는 못 미치지만 명예를 사랑하며 명예에 의해 움직이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체제에 속한 지배자들은 지혜와 용기, 절제의 덕 중에서 특히 용기, 기개적(氣槪的) 측면이 두드러지는데, 이 때문에 그들은 승리와 명예를 특히 사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자의 특성에 따라 명예지배체제 또한 그러한 특성을 갖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명예지배체제를 최선자 지배체제의 뒤에 둔다. 그리고 최선자 지배체제에서 어떤 부조화가 나타날 경우 명예지배체제로 타락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에 의해서 이러한 타락이 나타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먼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할 지배자적 혈통이 자연의 주기를 맞추지 못하고 자손을 생산함으로써 지배자적 자질에 못 미치는 자손이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본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납득하기 힘든 점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과정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수용가능한데, 그것은 바로 교육의 타락이다. 



지배자의 자질이 부족한 자손들이 지배자 계급에 오르게 되면 그들은 자질부족으로 인해 교육을 소홀히 여기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논의에 있어서 교육이란 바로 국가구성원들을 각자의 자질에 맞게 훈육시키고 철인왕에 걸 맞는 지배자들을 육성하며 각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매우 중요한 국가적 활동이다. 따라서 교육이 타락하면 덕의 조화가 흔들리고 정의는 훼손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을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각각 금, 은, 구리, 쇠의 족속으로 구분했는데, 교육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면 이 네 가지 족속들이 그에 걸 맞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로 뒤섞여 혼란이 초래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쇠와 구리의 족속들은 부를 얻기 위해 힘쓰고, 금과 은의 족속들은 타락하기 전의 옛날 제도로 회귀하고자 하는데, 이들은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다가 국가의 각 재물을 분배하여 사유하는 것으로 타협하며, 최선자 지배체제에서 방위자에 의해 지배받던 사람들은 특정 인간들에게 머슴과 종으로서 예속된다. 



이러한 정치체제에서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 보다는 기개를 가진 자를 지배자로 세우는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명예지배체제에서는 전쟁이 빈번하게 수행되며 승리와 명예를 중시하고 사랑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특정한 정치체제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체제의 기질을 닮아가는 경향이 있다. 명예지배체제적 사람은 지배와 명예를 중시한다. 따라서 노예에게는 가혹하지만 자유인에게는 상냥하고, 지배자에게 철저히 순종한다. 또한 교육의 타락으로 인해 영혼의 기질이 뒤섞여버린 탓에 변덕스럽게 되어 젊었을 땐 돈을 업신여기면서도 나이가 들면 돈에 애착을 갖는다. 즉, 기개적인 면이 두드러진 탓에 오만하고 변덕스러우며, 동시에 명예를 좋아하기에 자신보다 높은 명예를 가진 자 앞에선 순종하는 타입이라 할 수 있다.



5.3 소수지배체제


소수지배체제는 명예지배체제의 뒤에 이어지는 정치체제이다. 소수지배체제는 재산 평가에 의거하여 소수의 지배자가 국가를 지배하는 정치체제인데, 부자들만이 지배에 참여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지배에 참여할 수 없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명예지배체제에서 소수지배체제로의 이행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앞선 논의에서 명예지배체제는 교육의 타락으로 인해 기질이 뒤섞여 사유제가 널리 인정되고 부에 대한 갈망이 표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한 바 있다. 명예지배체제의 기개 넘치는 지배자는 점차 자신의 혼합된 기질로 인해 명예를 사랑하는 것에서 부를 탐하는 방향으로 변질된다. 지배자가 부를 중시함에 따라 그 국가 또한 부를 사랑하는 기질을 갖게 된다. 부와 부자가 존중될수록 덕과 훌륭한 사람들은 존중되지 않는다. 명예지배체제에서 용기의 덕이 칭송되는 것과는 달리 소수지배체제에서는 오로지 부자만이 칭송받으며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의롭고 덕망 있는 사람이라도 천대받는다. 



그렇다면 소수지배체제가 안고 있는 부정과 악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는 어떤 것이든 각자의 본성에 따라 제구실을 충실히 해내는 것을 정의라고 보았다. 그러나 소수지배체제에서는 지배자의 자질을 가늠하는 척도가 덕이 아니라 부이다. 어떤 사람의 자질을 평가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척도는 그 자가 갖고 있는 본성에 관한 덕이다. 즉 의사는 의술을 행하는데 있어서 의술의 덕을 충실히 따를 때 가장 훌륭한 의사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을 의사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과연 의술을 훌륭히 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물며 국가 전반의 운명과 방향을 책임지는 지배자의 위치에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을 앉힌다면 그는 과연 훌륭하게 국가운영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즉 지배에 관한 잘못된 척도가 국가의 정의를 훼손시키고 부정과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더불어 소수지배체제에서는 부를 숭상하는 까닭에 부자와 빈자가 분열되어버린다. 그들은 같은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해치기 위해 흉계를 꾸민다. 게다가 그들은 어떤 전쟁도 훌륭히 수행해낼 수 없다. 부자인 지배자들이 전쟁을 위하여 빈자인 대중들을 무장시킬 경우 외부의 적보다도 무장한 대중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며, 그렇다고 대중을 무장시키지 않으면 외부의 적에게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러한 체제에서는 한 사람이 하나의 일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를 기준으로 여러 일들을 기웃거리며 때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의 일도 해낸다. 따라서 진정한 하나의 제구실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은 서투르고 비효율적이다. 



또한 소수지배체제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고 극빈자가 되는 경우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체제에서는 언제나 극빈자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의 내부에 무서운 독기를 품고 범죄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 모두가 국가 전체에 부정과 악을 가져온다는 점은 자명하다. 



소수지배체제에 속한 사람들의 기질은 그 체제의 기질을 닮아간다. 이들은 자신의 영혼에서 욕망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그가 가지고 있던 지혜와 기개를 욕망의 노예로 예속시킨다. 그리고는 욕망이 원하는 대로 지혜를 움직여 적은 돈에서 큰돈이 생기는 방책을 꾀하게 하고, 기개를 움직여 오로지 부와 부자만을 칭송하게 만들면서 오로지 돈에 의한 명예만을 추구하게끔 만든다. 이것이 소수지배체제에 속한 사람의 모습이다. 



5.4 민주체제


소크라테스의 정치체제 논의에서 단연 흥미로운 점은 그가 민주체제를 상당히 부정적오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그는 정의에 가까운 순서대로 다섯 가지 정치체제를 나열했을 때 민주체제를 네 번째 서열에 위치시킨다. 이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민주체제를 최선의 정치체제로 꼽는 것과는 상반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는 민주체제를 과두제, 즉 소수지배체제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가 이토록 민주체제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정치체제는 가장 훌륭한 것에서 가장 비천한 것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있기에 민주체제 또한 소수지배체제가 타락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소수지배체제에서는 부가 존경받는다. 부가 존중될수록 절제의 덕은 힘을 잃는다. 이에 따라 부자들은 더욱 부를 탐하고 극빈자와 거지들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들 중 일부는 내면에 증오와 악의를 품고 혁명을 열망한다. 한편 부자들은 호화롭고 편리한 삶에 찌들어 신체와 영혼이 나약해진다. 그들이 나약해질수록 가난에 몰린 극빈자들은 자신보다 못한 그들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것에 대하여 극도의 증오감을 키워나간다. 결국 어떤 계기로 해서 증오에 휩싸인 대다수의 가난한 자들이 뭉치게 되면 그들은 부자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그들을 죽이거나 쫓아낸 뒤에 모두가 평등한 상태가 되게끔 지배체제를 재조직 한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민주체제가 도래한다.



민주체제가 수립되면 그 국가에는 자유가 넘치고, 다양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인정되며, 아름답고 다채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민주체제는 앞서 기술된 명예지배체제나 소수지배체제에 비해 오히려 나은 정치체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민주체제의 모습을 자유롭고 아름다운 체제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민주체제를 소수지배체제보다 못한 것이라 평가했을까?



우선 민주체제가 최선자 지배체제보다 부정에 가깝다는 점은 그들이 지혜, 용기, 절제, 정의보다도 자유를 최선의 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나친 자유에 의해 국가구성원들은 절제를 잃고 자신들의 본성에 따른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걸 맞는 단 하나의 역할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에 자유로이 참여하기 때문에 각 활동이 갖는 덕은 위축되고 훌륭하게 수행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앞서 살펴본 명예지배체제나 소수지배체제와 동일한 해악이다. 앞의 두 체제 또한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해 동일한 해악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해악이 동일하기에 이것만으로는 민주체제가 소수지배체제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민주체제가 소수지배체제에 못 미치는 정치체제인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체제 그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민주체제를 혹평한 진정한 이유는 민주체제가 가장 최악의 정치체제인 독재체제로 연결되는 직접적인 통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명예지배체제나 소수지배체제는 분명 불의한 정치체제이지만 이들이 곧바로 독재자를 탄생시키지는 않는다. 명예지배체제는 명예를 중시하기에 기개가 뛰어난 사람이 지배자로 인정받고 이후에 그보다 훌륭한 기개를 가진 자가 나타나면 지배자가 교체된다. 소수지배체제는 부자들이 공동으로 지배에 참여하기에 상호 견제와 협력에 의해서 독재자가 등장할 틈이 없다. 그러나 민주체제는 자유가 우선시되고 모두가 평등한 체제이다. 이러한 체제에선 무엇보다도 대중의 호감이 존경의 척도가 된다.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덕을 고루 체득시키는 교육이 붕괴된 상태에서 대중들의 인식력과 판단력은 저급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공허한 허풍과 과장이 대중의 호감을 사는데 중요한 능력이 된다. 그 결과 대중의 호감을 등에 없고 지배자로 등극한 자는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 독재자로 변모하는 것이다.



다음의 논의에서 소크라테스가 민주체제에서 독재체제로 변모하는 과정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5.5 독재체제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독제체제의 성격은 민주체제로부터 변해서 생기는 것이다. 소수지배체제가 목표로 세운 선(善)은 부(富)였다. 소수지배체제는 부에 의해서 성립하였고 그 부에 대한 극도의 탐욕으로 인해 망하여 민주체제를 성립시켰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민주체제를 성립시켰던 민주체제의 선, 그 선에 대한 극도의 탐욕이 민주체제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민주체제를 성립시키고 후에 민주체제를 무너뜨리게 될 민주체제의 선은 바로 ‘자유’이다.



민주체제의 지배자는 제비뽑기로 선출되는데, 민주체제의 사람들은 지배자가 자신들에게 자유를 무제한 제공해주지 않을 경우 그를 비난하며 끌어내린다. 이에 따라 그 체제의 자유는 극에 달한다. 극에 달한 자유는 모든 행동에 대한 자유이기에 무정부상태로 이어진다. 무정부상태에선 모든 권위가 무너지고 법률은 무시되며 질서는 파괴된다. 



앞선 논의에서 소수지배체제에서는 증오에 휩싸인 자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족속들을 수펄족이라 명명한다. 이러한 족속들은 민주체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소수지배체제에서는 수펄족이 지배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이 약하지만, 민주체제에서는 그들이 지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지배체제에서보다 훨씬 강력하고 사납다. 그들은 연단에서 대중을 상대로 발언하기와 행동하기를 즐기기 때문에 민주체제에선 이들이 주로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민중들에게 다소나마 나눠주면서 민중의 호감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민중은 늘 어떤 한 사람을 자기들의 대표자로 세우고 그를 키워서 강대하게 만드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민중의 호감을 얻은 수펄족은 곧 민중의 지도자가 된다. 이 민중의 지도자가 바로 독재자가 태어나는 뿌리가 된다. 힘을 얻은 민중의 지도자는 수펄족이 가지고 있는 증오의 기질을 드러내어 권력을 전횡(專橫)하고 점차 독재자로 변모해간다. 



이렇게 탄생한 독재자는 언제나 자신의 적으로부터 살해의 위협에 직면한다. 따라서 독재자는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민중을 규합하여 자신의 경호원이 될 것을 민중에게 요구한다. 민중들은 그 한 사람을 위해 똘똘 뭉치고 이로부터 권좌를 탄탄히 한 독재자는 자신들의 적을 모조리 숙청하면서 강력한 독재자가 되어버린다. 



자유가 극도로 치달아 방종이 되고 무정부상태를 가져옴에 따라 허풍과 과장으로 군중을 휘두르는 능력이 있는 수펄족이 민중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그가 민중들을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방패막이로 둔갑시키면서 민주체제로부터 독재체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재자와 독재체제에 속한 사람들은 어떠한 길을 걷게 되는가? 독재자는 민중의 호감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독재체제를 수립하였다. 권력을 손에 쥔 독재자에게는 권력유지가 핵심적인 목표가 된다.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이 자신을 필요로 하도록 만든다. 그 수단이란 결국 전쟁이다. 독재자는 언제나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그 적과 전쟁을 벌임으로써 민중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또한 독재자는 민중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두어 가난해진 민중들이 하루하루의 일에 쫓기게끔 만들어서 자신의 권력을 찬탈하고자 하는 음모를 차단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결국 독재체제의 압력에 민중들이 싫증을 느끼면 독재자는 반역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자신에게 협력했던 가장 유능하고 용감한 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국가 전체를 말끔히 ‘정화’시킨다.



이 ‘정화’라는 표현이 참으로 절묘하다. 소크라테스는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누가 용감한 사람인가, 누가 고매한 정신을 가진 사람인가, 누가 사려 깊은 사람인가, 누가 부자인가를 날카롭게 보지 않으면 안되네. 왜냐하면 그의 행복은 그런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음모를 꾸미느냐의 여하에 달려 있으니까. 나라를 말끔히 정화할 때까지는 말일세. (중략) 하지만 이것은 의사가 몸을 정화시키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일세. 왜냐하면 의사는 몸 안에서 가장 나쁜 것을 제거하고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놓지만, 그는 바로 그것과 반대되는 일을 하니까.”[각주:1]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독재자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그가 빠져있는 비참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끔찍이도 운좋은 필연으로 묶이고 있는 셈인데, 그 필연이란 그에게 숱한 보잘것없는 인간들과 함께, 게다가 그런 자들에게서 미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든가, 아니면 살기를 그만두든가 어느 하나를 택하도록 명령하는 것일세.”[각주:2]



한편 독재체제 하에 있는 사람들은 독재자의 권력유지활동을 위한 전쟁과 군대유지, 공권력의 남용에 필요한 갖가지 재원을 위해 과도한 세금에 찌들게 된다. 독재자를 낳은 것은 민중이다. 따라서 민중은 아버지이고 독재자는 그의 아들이 되는데, 그 아들이 장성하여 힘이 강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민중은 아들인 독재자를 부앙해야하는 처지가 된다. 만약 민중이 독재자에 대하여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내쫓듯 이 나라에서 나가라고 명령한다면, 독재자는 마치 아버지를 죽이는 살부자(殺夫者)처럼 민중을 폭력으로 억눌러버린다. 이것이 독재체제의 부정과 해악이며, 소크라테스가 열거한 다섯 가지 정치체제 중 최악의 정치체제인 것이다.



“아마 이거야말로 터놓고 인정받은 독재체제일 거고, 민중이란 속담에 있듯이 자유인에게의 예속이라는 ‘연기를 피하려다가’ 노예들의 전제적 지배라는 ‘불속으로 떨어지고만 격’일세. 그 많은 지나친 자유라는 옷 대신에 이제 가장 잔인하고 가장 쓰라린 노예들에게의 예속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말이야.”[각주:3]



이로써 다섯 가지 정치체제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고찰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제1부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2천 4백여 년 전에 쓰여 졌다. 따라서 이 엄청난 시간적 간극을 염두에 둔 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어마어마한 역사적 간극이 존재함에도 이 책은 오늘날 우리의 정치사회에 여전히 막대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 



6. 마치며


소크라테스는 비록 민주체제에 관해서 독재체제 다음가는 불의한 체제라고 판단했지만, 그의 논의 안에 담긴 민주체제에 관한 묘사는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사회에 내재한 위험성들을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서 최고의 선으로 꼽는 ‘자유’에 대한 통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목도할 수 있었던 민주주의와 독재체제의 친연성은 바로 독일의 히틀러가 아닐까 싶다. 히틀러를 탄생시킨 것은 쿠데타나 폭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적 국민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결과였다. 욕망과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이것에 지배당한 자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는 나치독일이라는 희대의 독재체제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자기 절제’ 없는 민주주의체제는 언제든 독재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더불어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는 어떠한가? 독제체제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고찰을 상기해보자. 독재자는 민주체제의 민중에 의해서 태어났다. 속 알맹이 없는 공허한 허풍과 과장에 현혹된 민중은 그를 민중의 지도자로 추대하였고, 애초에 지도자로서의 덕을 갖추지 못한 자였던 그는 결국 자신의 욕망에 휘둘려 나라 전체를 독재체제로 변모시켰다. 



우리는 어쩌면 민주체제의 끄트머리와 독재체제의 출발점 사이에 가로놓여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민주적 대표자의 덕과 자질을 살피기 이전에 그의 자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의 후광에 주목했고, 한편으로는 진영 논리에 경도되어서 다른 지역을 억누르기 위해, 다른 생각을 가진 자를 배제하기 위해 그 자를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젊은 자들은 방종에 취하여 짧은 순간의 중요한 민주적 선택을 보잘것없는 오락거리와 맞바꿔버리고, 어떤 자들은 타성에 젖어서, 또 어떤 자들은 노예와 같은 충성심에, 또 어떤 자들은 그저 정권의 방향성에 따른 반사이익에 기대를 걸고 선택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오늘날 우리가 겪어야 했던 무서운 결과들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우리의 정치문화는 성장하고 있다. 쓰라린 경험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시민주체로서의 합리적 시각을 가지고 우리의 정치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우리는 민주체제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부정적인 관점에 대하여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근거로 훌륭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리를 마치고자 한다.


“도둑질, 강도질, 소매치기, 날치기, 노략질, 납치 등은 작은 악행일세. 물론 이것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그런 것이지. 왜냐하면 원래 작은 악행이란 큰 악행에다 비교해서 작다는 것이고, 그리고 지금 든 모든 것을 합쳐도 나라의 참상이나 곤경이라는 점에서는 독재자 한 사람과 비교하면, 흔히들 말하듯이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기 때문일세. 아닌게아니라 그런 인간과 그에게 추종하는 자들의 수가 나라 안에 많이 늘고, 게다가 그들이 자기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이 자들은 민중의 우매(愚昧)의 덕분으로 자기들 중에서도 스스로 자신의 영혼 안에 가장 크고 가장 강한 독재자를 가지고 있는 자를 추대해서 독재자를 생겨나게 하기 때문일세. 

(중략) 

그런데 만약 민중이 자진해서 복종한다면, 그래도 좋겠지. 그러나 만약 나라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그땐 이 독재자적인 인간은, 마치 앞서 부모에게 매질을 했듯이 이번에도 가능하기만 하다면, 새로운 패거리들을 끌어들여서 그의 조국에 매질을 할 것이고, 그자들 밑에다 그가 일찍이 친애한 모국과 조국을 예속시키면서 유지하고 키울 것일세. 이것이야말로 이런 인간의 욕망이 마지막으로 닿는 곳이겠지.

(중략)

이런 인간을 우리는 신의가 없는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지? 게다가 또, 최고로 부정한 인간이라고도 말일세.“[각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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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플라톤, 조우현 역, 『국가』, 삼성출판사, (1990), pp.349 [본문으로]
  2. 플라톤, 조우현 역, 『국가』, 삼성출판사, (1990), pp.350 [본문으로]
  3. 플라톤, 조우현 역, 『국가』, 삼성출판사, (1990), pp.352 [본문으로]
  4. 플라톤, 조우현 역, 『국가』, 삼성출판사, (1990), pp.362-3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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