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파리는 데카당스적 분위기가 만연하고 귀족들 사이에 향락과 사치가 그 퇴폐적 분위기를 한층 더 해주던 시기였다. 이와 동시에 서민들의 삶 속에 스며있는 지독하고 비참한 가난도 함께했다. 발자크는 이 작품 안에 프랑스 파리의 퇴폐, 빈부격차, 찬란함 속에 감춰진 허위와 가식을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이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할 것인데, 만약 이 작품의 감상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줄거리를 건너 뛰는 것을 권한다.
이 이야기는 한 하숙집과 그 하숙인들을 묘사함으로써 출발한다. 과부 보케르 부인이 운영하는 이 하숙집은 그야말로 가난이 온 구석에 깃든 그런 곳이었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가난의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음습한 풍취를 뿜어내던 이 하숙집엔 10명 남짓한 하숙인들이 거처하고 있었다.
으젠 라스티냐크는 이곳 하숙집에 세들어 살고있는 젊은 학생이다. 이 소설의 중심을 차지고 있는 으젠이란 인물은 몰락한 귀족집안 출신으로, 지방에서 변변찮은 포도밭을 운영하는 집안으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아 근근히 생활하는 법학도이다. 어릴 적부터 몸소 경험해왔던 가난의 그림자는 으젠에게 강력한 출세욕을 심어놓았다. 으젠은 이 출세욕에 자신의 젊음을 바쳐 고위법관이 될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던 이 청년에게 출세욕을 충족시켜줄 하나의 계기가 찾아온다. 당시 파리의 사교계를 주름잡던 보세앙 자작 부인이 자신의 사촌이었음을 으젠이 알게된 것이다. 으젠은 보세앙 부인과의 혈연을 기반으로 사교계를 드나들면서 귀부인과 연을 맺고 출세할 꿈을 갖게된다.
한편 으젠이 머물던 하숙집엔 고리오라고 하는 늙은 남자가 기거하고 있었다. 고리오는 과거 제면업자로서 탁월한 사업수완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보케르의 누추한 하숙집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그 하숙집 사람들에게 수수께끼이자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이 늙은 부자인 고리오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초라하고 누추한 하숙집 풍경에 걸맞는 행색이 되어갔다. 하숙집 사람들은 그의 몰락에 대하여 갖가지 추측들을 떠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평소 고리오를 찾아오는 젊고 아름다운 두 귀부인이 있었다는 점에 미루어 고리오가 음탕한 색욕으로 인해 자신의 부를 탕진해버린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때부터 하숙인들은 고리오에게 경멸의 의미가 담긴 '고리오 영감'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으젠 또한 하숙인 중 한사람으로서 고리오를 경멸하고 무시해왔다.
으젠은 사교계에서 허영심 가득한 귀부인을 자신의 젊음과 재치로 사로잡을 꿈에 부풀어 사교계에 열정을 바치기 시작한다. 그의 사촌 보세앙 부인의 지원을 받아 가난한 처지에서도 근근히 사치의 가면을 유지하기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날 으젠은 사교계에서 레스토 백작 부인과 연이 닿게 된다. 레스토 부인의 위엄과 아름다움에 취한 으젠은 그녀의 정부가 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러다가 고리 영감을 찾아오던 귀부인 중 한 명이 바로 레스토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당시 레스토부인의 정부로 있던 막심 트라유 백작과 경쟁하면서 몰락귀족 출신인 자신의 처지에 상심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으젠은 레스토 부인의 홀대에도 끈질기에 레스토 부인을 찾아가며 그녀의 마음을 사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차에 으젠은 레스토 부인에게 '고리오 영감'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자 레스토 부인은 갑자기 분노하며 으젠과의 연을 끊어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으젠은 고리오 영감의 정체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된다. 그리고 여러 정보를 모은 결과 레스토 부인이 고리오 영감의 첫 째 딸임을 알게된다. 즉 레스토 부인은 으젠이 자신의 아버지인 고리오를 '영감'이라고 경멸한 데 분노한 것이다.
으젠은 고리오에게 총 두 명의 딸이 있음을 알아낸다. 첫째는 아나스티지라는 이름을 가진 레스토 부인(나지라고도 불림), 둘째는 뉘싱겐이란 은행가의 부인인 델핀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사교계에서 어울리던 두 딸들의 사치에 따른 엄청난 비용과 빚을 아버지인 고리오가 갚아왔으며, 이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온 결과 결국은 자신들과 같이 가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부터 으젠은 고리오에게 점차 남다른 연민과 호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으젠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보케르 하숙집의 하숙인이었던 보트랭이란 중년 남자가 으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온 것이다. 하숙인 중에 빅토린이라는 젊은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엄청난 부호의 딸이었으나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자식 취급도 받지 못하고 아버지와 오빠의 무시로 인해 최소한의 지원을 끝으로 가난한 삶 속에 던져진 비운의 여성이었다. 빅토린은 평소 으젠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보트랭은 이 점을 이용하여 자신이 세운 계획을 으젠에게 말해준다.
자신이 빅토린의 오빠와 결투를 벌여 그를 죽이면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할 다른 자녀를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때 남게될 유일한 자녀인 빅토린이 상속녀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으젠이 빅토린과 결혼하게되면 으젠은 단번에 엄청난 재산을 손에넣고 출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에 대한 대가로 보트랭 자신에겐 재산의 2할을 건네주면, 결국 빅토린의 인생은 구원받고 으젠은 출세하게되며 자신은 새로운 사업을 벌일 자금을 얻게 되므로 아름다운 결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트랭의 제안으로 인해 으젠은 빅토린과 뉘싱겐 부인(델핀)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던 차에 빅토린의 오빠가 어떤 자와 결투를 벌여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트랭의 계획이 이미 실행 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전율한다.
이 때 보케르 하숙집에 으젠의 선택을 확정지어줄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보트랭이란 자는 사실 탈옥수였고 심지어 범죄자들 사이에서 '불사신'이란 별명을 얻게된 지하세계의 거물이었다. 보트랭을 쫓던 형사들은 보케르 하숙집의 하숙인 두명을 돈으로 매수하여 보트랭이 탈옥수라는 증거를 찾을 것을 청부한다. 그리고 형사들의 계획이 성공하여 보트랭의 정체가 드러난다. 보트랭은 본색을 드러내며 위협적인 모습으로 하숙인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곧 들이닥친 형사들에게 잡혀 끌려가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으젠은 뉘싱겐 부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으젠은 뉘싱겐 부인과의 교제 속에서 사교계의 이중적인 면모를 절감하게 된다. 찬란하고 화려한 부인들의 사치와 향락 뒤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비굴과 거대한 빚더미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으젠은 하숙집에서 고리오와 그를 찾아온 두 딸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그녀들은 고리오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이미 재산의 대부분을 잃은 고리오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녀들의 실제 남편들은 자신의 부인을 사랑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그녀들의 돈줄을 쥐고 자유를 속박하고 있었다. 고리오는 자신의 사위들에게 분노하면서 마지막 남은 종신연금을 팔아 두 딸의 사치비용을 지불하는데 써버린다.두 딸은 그 돈으로 앞으로 있을 사교계의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갖 사치품들을 구입하여 치장한다.
얼마 뒤 신경이 쇠약해진 고리오는 회생하지 못할 중병에 걸린다. 죽음을 앞둔 고리오를 보게 된 으젠은 고리오의 두 딸인 레스토 부인과 뉘싱겐 부인을 찾아가 아버지의 곁을 지킬 것을 충고하지만 그녀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고리오를 찾아가길 거부한다. 이에 분노를 느낀 으젠은 고리오 영감의 곁을 지키며 곧 딸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타이르고 위로하지만 끝내 두 딸은 찾아오지 않는다. 고리오가 의식을 잃고 죽음의 문턱을 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레스토 부인이 찾아오긴 하지만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고리오는 결국 딸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으젠은 하숙집 하인 한 명과 단 둘이서 고리오의 장례비용을 지불하고 그의 임종을 애도한다. 고리오의 초라한 장례식에서도 끝내 두 딸은 나타나지 않는다.
허위와 위선이 판치는 프랑스 파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있는 이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주제 중 하나는 가난과 사치의 대비이다. 작품에서 이 둘은 단순히 분리되어있지 않다. 부와 가난을 한 인생에서 동시에 맛본 고리오, 가난한 처지이지만 사교계에선 주목받고 있었던 으젠, 사치에 둘러쌓여있지만 그 기저엔 빚더미가 자리잡고 있었던 고리오의 두 딸들, 이렇게 부와 가난은 모순처럼 동시에 존재했다. 사치의 뒤엔 가난이 스며들어 있었고, 가난은 사치의 껍데기를 끊임없이 탐닉했다.
또한 고리오와 두 딸의 관계에서 사랑의 대비를 찾아볼 수 있다. 조건없는 사랑과 조건부 사랑이 이들 사이에서 대조를 이룬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던 고리오의 조건없는 부성애는 역설적이게도 두 딸들에게 조건부 사랑을 심어주었다. 고리오는 딸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부를 두 딸에게 아낌없이 주었으나, 두 딸들은 아버지의 부를 조건으로 하여 아버지에게 자신의 사랑을 속삭였다. 고리오의 넘쳐흐르는 파도와 같은 사랑은, 두 딸의 마음 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샘솟을 샘물마저 휩쓸어버렸다. 고리오의 사랑은 돈을 매개로 두 딸에게 전달되어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천문학적인 돈의 규모에서 나오는 위압이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본질을 가리고 두 딸의 마음 속을 그 돈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채워버린 것이다.
이 소설에서 굉장이 높은 빈도를 가지고 출연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프랑스의 화폐 단위인 '프랑'이다. 이 단어는 이야기 내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소설 내 모든 행위 뒤에는 프랑을 단위로한 돈 계산이 줄곧 따라다닌다. 인물들의 대부분의 행위들이 돈을 목적으로 행해지며, 많은 생각들이 돈계산에 사로잡혀있다. 보케르 부인에게 고리오의 죽음은 몇 십 프랑의 비용 지출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사교계는 자신의 능력과 돈을 과시하기 위하여 돈을 온몸에 펴바르는 돈의 진창이었다. 귀족 사교계에서의 부부관계는 지참금 거래를 위한 형식적인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부인과 젊은 귀족청년들 간의 정부관계는 부끄러움의 대상이기는 커녕 그들 사이에서 당연한 것처럼 용인되다시피 했다. 남편들은 결혼지참금을 챙긴 후 부인의 외도에 대하여 신경조차 쓰지 않았으며, 부인들에게 남편이란 귀족부인의 칭호를 선사해주고 자신의 사치와 향락, 정부와의 교류를 지원해줄 물주에 불과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상대에 대한 애정표현에 적극적이었는데, 이 조차도 악취를 풍기는 사람이 온 몸에 향수를 뒤집어쓰는 것과 같은 가식행위에 불과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으젠이 발견한 단 하나의 진심은 고리오의 부성애였다. 으젠 또한 돈과 명예를 얻기위한 출세욕에 불타고 있었으나, 고리오의 헌신적인 부성애를 보고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젠은 사교계를 배워감에 따라 화려함과 찬란함 뒤에 감춰진 악취와 진창을 알게 되면서 경악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쌓일 때마다 그도 결국 이 분위기에 취해 적응되어간다.
사회의 분위기는 개인을 천천히 집어삼키는데, 그 어떤 순수하고 숭고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도 집단적 분위기가 지니는 흡인력으로 인해 끝내 그 분위기에 걸맞는 구성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사회적 악습에 침식당한 개인은 '나라고 별 수 있겠냐'라는 식의 합리화로 자신의 정신에 끊임없이 마약을 주사한다. 고리오의 어리석지만 헌신적인 부성애, 그리고 으젠의 젊은이 특유의 순수한 양심은 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 분위기 속에 흠뻑 취한 자들은 인간의 진심과 순수에 대하여 유치한 미숙아적 면모라고 낙인 찍으면서, 악취가 진동하는 자신들의 행위는 관록이 엿보이는 어른다운 행동이라며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기만하는 법이다. 타인의 악취에 대해선 경멸에 치를 떨면서도 자신의 악취에는 한없이 관대한 이러한 인간상은 탈옥수 보트랭의 세상을 향한 조롱에서 여과없이 드러난다.
「당신은 우리 같은 놈들보다 더 훌륭합니까? 타락한 사회에서 무기력한 부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치욕이 우리 어깨에는 덜 있어요. 당신들 중에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도 나의 이 얘기에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오.」[각주:2]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데카당스와 허위의 분위기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의 칼날은 비단 당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허위의식, 탐욕으로 인해 뒤틀려버린 양심, 누군가를 짓밟아야 비로소 느껴지는 기만적인 명예를 향한 갈망들을 관조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고리오 영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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