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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자료

조르주 아감벤 『호모 사케르』정리

by Radimin_ 2016.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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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상태, 비식별역, 포함인 배제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주권 개념이 어떻게 성립하였는가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고증하는 계보학적 작업을 수행해나간다. 아감벤은 자연상태라는 국가 이전의 원초적 상태를 상정하고 이 상태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강력한 통치자가 발생한다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논의를 반박한다. 그는 주권이 성립되는 것은 자연상태라는 원초적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주권 권력이 예외상태(홉스적 용어로 자연상태. 법의 정지 상태)를 마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주권을 성립시키고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아감벤이 말하는 예외상태란 법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이다. 주권은 법적 질서 배제하는 예외상태를 선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예외상태에 강력한 주권을 행사하고 주권의 범주 안에 예외상태를 포함하게 된다. 즉 예외상태의 선포는 이른바 포함인 배제이다. 예외상태를 창출하는 것은 역으로 배제를 통한 포함으로 나아가며 법의 정지가 법의 영토를 확장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주권적 상태가 창출된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우리는 예외상태가 법의 외부이지만 사실은 내부이기도 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렇듯 식별불가능한 특징을 가지는 예외상태를 비식별역이라 부른다. 주권 권력은 이렇듯 예외상태라는 비식별역을 통해 확장되기에 결국 우리가 사는 생활세계 전체가 비식별역이자 예외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법의 이중적 효력구조(법 효력의 작용과 정지)는 예외상태를 통해 성립하고 확장해나가는 주권 권력의 현존 방식이 된다.



■ 호모 사케르는 누구인가


호모 사케르는 이러한 비식별역에 노출된 벌거벗은 생명이다.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호모 사케르는 이중적 배제의 구조 안에서 탄생하는데, 정치적 법과 신적 법으로부터의 배제가 그것이다. 호모 사케르를 살해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으며, 또한 그를 희생 제물로 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정치적 법과 신적 법 양자 모두로부터 구제의 가능성을 박탈당한 호모 사케르의 삶은 이미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이며, 그는 비오스(bios)적 삶을 철저하게 박탈당하고 조에(zoè)적 삶만을 누리게 된다.[각주:1] 조에적 삶조차 이중적 배제 구조 안에서 언제든 살해당할 수 있는 위협에 의해 위태로운 삶이 된다. 이러한 생명 정치에 직면한 자가 바로 호모 사케르이다.



 잠재태와 현실태, 그리고 비잠재태


이러한 호모 사케르 양산 구조는 근대와 현대에 이르면서 면면히, 그리고 교묘하게 이어진다. 근대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의 조에적 삶을 비오스로 이행시키지만, 동시에 이들에 대한 정치에서의 소외와 배제의 논리로 작동한다. 이러한 비식별역인 예외상태, 그리고 호모 사케르의 양산을 통한 주권 권력의 확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형식적이나마 주권자로 명명된 국민들을 동시에 잠재적 호모 사케르의 상태로 남겨둔다. 이러한 잠재태 안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호모 사케르로 명명되는 현실태로 이행될 수 있는 잠재성에 직면해있다. 잠재성은 그것이 발현되지 않았지만 발현될 수 있다는 실재적인 힘을 획득한다. 이러한 잠재성의 실재성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를 예외상태로 상정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감벤은 이러한 주권 권력의 폭력 앞에서 잠재태로부터 비잠재태로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잠재태에서 주권 권력이 통용되는 현실태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태가 가지고 있는 잠재성의 실재성을 닫아버림(거부함)으로써 비잠재태로 이행하자는 것이다.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이행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의지가 바로 비잠재태로의 이행이다. 이러한 거절의 의지는 바로 나의 잠재태를 일방적인 현실태로의 이행 도상에 놓는 것이 아닌, 잠재태를 자율적으로 유지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잠재태로의 이행 가능성은 호모 사케르 안의 호모 사케르인 무젤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열리게 된다. 호모 사케르인 우리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호모 사케르,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호모 사케르를 직시함으로써 침묵을 통한 그들의 증언을 들어야한다. 비식별역에 노출된 벌거벗은 생명들의 증언불가능성은 바로 우리 내부의 호모 사케르를 관조함으로써 비로소 증언가능성으로 전환되고 이를 통해 우리는 비잠재태로의 이행을 가능케하는 의지를 획득할 수 있다.

 


■ 주권자와 호모 사케르, 그리고 추방령


추방령은 추방령이라는 주권적 행태를 통해 대상을 포함함으로써 배제하는 것이며, 동시에 호모 사케르로 선언한다는 점에서 배제함으로써 포함하는 것이다호모 사케르는 이중적 배제의 구조이자 이중적 포획의 구조에 직면한 자이다신성한 생명, 즉 살해할 수 있으나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생명이란 근본적으로 주권적 추방령하의 생명이며, 또 이런 의미에서 벌거벗은 생명의 창출은 곧 주권의 근원적인 활동이다오늘날 생명의 신성함은 주권 권력과 대립되는 절대적인 기본 인권으로 주장되고 있지만, 원래 그것은 생명을 죽음의 권력에 종속시키고 내버려짐의 관계 속에 결정적으로 노출시킨다는 정반대 의미를 갖고 있었다

주권자와 호모 사케르는 법질서의 양극단에 위치한 두 가지 대칭적인 형상들로서,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서로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들로 간주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며, 또 그를 향해 모든 사람들이 주권자로 행세하는 자가 바로 호모 사케르이다.



■ 우리 중 누구라도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다 - 추방령의 구조


성스러운 생명이란 정치적 비오스도 자연적 조에도 아니며, 조에와 비오스가 서로를 포함하고 배제하면서 서로를 끌어들이고 있는 비식별역이다. 

국가는 사회적 결합이 아니라, 그러한 결합을 가로막는 절연에 기반해 있다. 절연을 기존의 결합을 해소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결합 자체가 원래 일종의 해소 또는 예외의 형태를 갖고 있다. 즉 포섭되어 있는 것은 동시에 배제되어 있으며, 인간의 생명은 오직 무조건적인 죽음의 권력에 내버려짐으로써만 정치화될 수 있다.

절대 권력이란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타인들을 살해할 수는 있지만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생명으로 구성해내는 능력이다. 

주권자의 살해를 단순한 살인 행위로 취급하는 사법 체제 역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특별한 범죄에 해당하며, 대역죄로 정의되어왔다. 문제의 핵심은 호모 사케르나 주권자의 경우 모두 어떤 사람의 살해가 살인죄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현대 헌법 속에서도 주권자의 생명을 희생물로 삼을 수 없다는 원칙의 흔적은 국가 원수를 일반 법정에 회부할 수 없다는 것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늑대인간 그것은 짐승과 인간, 퓌시스(자연)와 노모스(), 배제와 포함 사이의 비식별역이자 이행의 경계선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두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그 두 세계 모두에 거주하는 늑대 인간의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삶이 바로 추방된 자의 삶인 것이다.

자연상태는 연대기적으로 국가가 창설되기 이전에 실재했던 시대가 아니라 국가에 내재해 있는 원리로서 국가분해된 상태인 것처럼간주되는 순간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살펴보았다(이런 의미에서 자연상태는 예외상태와 흡사하다). 홉스의 자연상태란 국가의 법률과는 무관한, 법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그러한 법을 구축하고 그러한 법 속에 정주하는 예외이자 경계선이다그것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기보다는, 좀더 정확하게는 모두가 다른 모두에게 벌거벗은 생명이자 호모 사케르인 상황, 달리 말하자면 모두가 모두에게 늑대인간인 상태이다.

추방된 자는 자신의 분리된 상태 그 자체로 넘겨지는 동시에, 자신을 내버린 자의 자비에 위탁된다. 즉 배제되는 동시에 포함되며, 해방되는 동시에 포획당하는 것이다추방령이란 엄밀히 말해 인력인 동시에 척력으로서, 주권적 예외의 양극인 벌거벗은 생명과 권력을, 또한 호모 사케르와 주권자를 함께 결합시킨다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정치적 관계들 및 공적인 공간들 속에서 이러한 추방령의 구조를 간파해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이것이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를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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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에(zoè)는 '목숨 그 자체로서의 생명'을 의미하고, 비오스(bios)는 '정치적 생명'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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