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리자료

철학과 미학에서의 '미와 숭고' 개념 변천사

by Radimin_ 2016. 7. 4.
반응형

미와 숭고의 관계는 시대의 변화를 통해 변화를 거듭해왔다. 고대에서 초기에 미와 숭고는 분리된 개념이었다. 미란 이성과 통약가능한 것으로 이성을 통해 파악가능한 것이다. 이에 반해 숭고는 이성과 통약불가능한 것으로 이성 너머의 형언할 수 없는 압도적 감동의 체험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술가들은 후천적 지식에 의해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자들로 미의 영역에 위치했으며, 반면 시인은 그들의 언어가 신들로부터 유래하는 것으로 여겨져 신적 영감의 소산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시인은 숭고의 영역에 위치한 자들이었다.




■ 소피스트 시대 ~ 근대


소피스트 시대에 이르면 미와 숭고는 통합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숭고를 미의 범주안에서 해석하기 시작했다. 미는 숭고한 미와 감각적인 미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미와 숭고의 관계는 근대에 이르러 다시금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로고스만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압도적인 감동의 힘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숭고 자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합리주의 미학은 외적으로는 미학이라는 단일 체계를 띠고 있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이성의 기반에 서있는 것()과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숭고)을 구분하였던 것이다.



■ 바움가르텐


바움가르텐은 미와 숭고를 본격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각의 혼연함을 강조하면서 이성에 입각한 인식이 아닌 혼연한 인식을 통해 모호한 사유 그 자체에서 숭고를 조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낮설게 다가오는 예술적 충격과 같은 혼연한 순간들에서 진정한 사유의 순간이 도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 칸트


칸트에 이르러 근대 미학이 완성됨과 동시에 현대 미학이 출발하게 된다. 칸트는 그의 3대 비판 시리즈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서 이성을 체계화하고 법칙적 세계인 현상계적 이성인 순수이성, 가치적 세계인 예지계적 이성인 실천이성으로 두 세계를 나눈 뒤, 이 두 세계를 라고 하는 미적 판단력을 통해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미를 취미판단과 숭고로 나눈 뒤 취미판단은 순수이성과 결합하고 숭고는 실천이성과 결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현상계와 예지계의 조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헤겔


헤겔예술을 절대정신 구현하는 과정 도상에 놓음으로써 물질과 정신의 조화라는 목적론 안에 편입시킨다. 정신이 세계를 창조하였다(정신-즉자). 정신이 외화되어 나타난 것이 자연이며(외화-대자) 그 이후 자연에서 그것을 외화시킨 정신을 인식하는 단계(즉자-대자)에 이르러 외화된 정신이 정신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의 최종점이 절대정신이며 절대정신은 예술-종교-철학의 과정을 거쳐 구현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중시했던 헤겔은 자연미보다는 인공미를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다. 또한 절대정신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예술은 종언을 고하게 된다고 하였다.



■ 현대와 포스트 모더니즘


현대에 이르면 예술에 대한 사유라는 관념론 미학에서 예술로부터의 사유라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아도르노는 부정성, 자율성의 개념을 통해 숭고의 미학으로 다가서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도래 이후 리오타르는 서구의 합리주의적 예술관에 숭고를 대립시킴으로써 이성의 잣대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관을 해체하고자 한다. 리오타르는 모더니즘은 아직 향수에 젖어 있는 숭고의 미학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은 향수를 떨쳐버린 숭고의 미학이라는 공식을 제시한다. 리오타르는 과거나 미래 혹은 그 어떤 피안이 아닌 지금 여기를 강조함으로써 어떤 결과(불쾌 혹은 쾌)가 나타나지 않은 찰나의 순간에 숭고의 계기를 마련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