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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학술

[도서 리뷰 정리] 장 보드리야르 / 『소비의 사회』 / 문예출판사 / 제1부 사물의 형식적 의례

by Radimin_ 2016.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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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책은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각주:1]



이 책은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장 보드리야르의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사회비판서이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소비의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진보, 경제체계의 발전을 통해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은 시장의 소비자로서 돈만 있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여기까지가 소비사회를 둘러싼 일반적인 관점이다.



보드리야르는 이 일반적인 관점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며 진정한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가? 

소비자의 상품에 대한 열망이 진정 소비자의 주체적인 욕구에 기반한 것인가? 

소비사회는 진정 풍부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보드리야르는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사물과 소비를 조명한다. 그는 소비사회에서의 사물은 사물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체계에 의해 기호화되어 받아들여진다고 이야기한다. 사물은 사물 그 자체의 특성이나 쓰임에 따라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상징이자 기호로서 소비된다는 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리고 그는 기호화된 사물은 사물의 실질적 기능에 대한 가치인 ‘사용가치’에 의거하여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의 계급적 차이체계를 반영하는 ‘교환가치’에 입각하여 평가된다고 이야기한다. 


사물을 사용가치적 관점에서 소비할 때 소비자는 구매한 사물의 기능을 향유하며 욕구의 만족을 꾀할 수 있다. 사물 그 자체와 사물의 사용가치는 객관적이고 고정된 실체로서 욕구 충족에 대한 안정적 기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세탁기능을 기준으로 세탁기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세탁기가 온전하게 작동하기만 한다면 세탁기의 내구도가 다할 때까지 기능 하나로 사물에 대한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교환가치에 의거한 소비는 소비자의 만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소비사회에서의 소비자는 세탁기를 두고 그 기능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세탁기의 출시가격, 브랜드, 디자인, 유행, 고급과 보급형의 구분, 신제품과 구제품의 구분을 통해 다층적으로 세탁기라는 사물의 가치를 평가한다. 비록 시장에 유통되는 각각의 세탁기의 세탁기능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각 제품의 가치는 위에서 열거한 추상적 특징들에 영향을 받아 가치 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는 세탁기라는 제품이 소비자 간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계층적 위계질서를 표현하는 추상적 기호로서 통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소비자가 최신식의 최고급 브랜드를 가진 고가의 세탁기를 구매하여 상류계급의 기호를 소비했다하더라도 유행의 흐름, 브랜드 가치의 등락, 또 다른 신제품의 등장 등의 사건에 의해 그 사물의 교환가치는 곧장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사물의 기능과 내구성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사물을 갈아치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환가치적 소비가 만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매커니즘이다. 교환가치란 이처럼 사물의 기능을 뛰어넘어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추상적 요소들이 가미된 주관적 가치평가양식을 의미한다. 


이처럼 소비사회에서의 사물에 대한 소비는 소비체계가 조작하는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며, 이는 소비자 간의 차이생산을 유도한다. 이러한 교환가치적 소비는 소비자들의 행복과 향유에 대한 수단이 아니라 오로지 소비체계의 자기보존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에 대한 정리는 세 번의 포스팅으로 나누어 진행할 예정이다.


관련 포스팅

2016/07/19 - [독서/철학] - [도서 리뷰 정리] 장 보드리야르 / 『소비의 사회』 / 문예출판사 / 제2부 소비의 이론-1

2016/07/22 - [독서/철학] - [도서 리뷰 정리] 장 보드리야르 / 『소비의 사회』 / 문예출판사 / 제2부 소비의 이론-2




제1부 사물의 형식적 의례



‘풍요로운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인간은 어떤 사물이든 돈만 있으면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대량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사물에 의해 둘러싸였다. 표면적으로 인간은 소비를 통해 사물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비사회에서 생산된 수많은 사물들은 소비를 통해 소비자의 소유물로 귀속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이 사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비사회는 사물의 리듬을 인간에게 강요한다.


파노플리와 드럭스토어는 사물의 리듬이 인간에게 강요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된다.



■ 풍부함과 파노플리Panoplie


파노플리란 쉽게 말해서 상품의 세트를 의미한다. 사물은 각기 고유한 쓰임새에 따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세탁기는 세탁기이고 침대는 침대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의 시각으로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각각의 상품들은 매장에서의 진열체계, 상표, 디자인의 어울림 등을 통해 하나의 세트를 이룬다. 세트로 묶인 사물은 독립적인 사물 그 자체임을 넘어서 하나의 의미하는 것(signifiants)이 된다. 


가령 오크원목을 사용하여 제작된 침대는 그와 어울리는 디자인을 갖춘 침구류와 갓전등, 서랍장 등과 함께 진열된다. 같은 기능을 지닌 침구류, 갓전등, 서랍장이라 하더라도 이 오크원목 침대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비되기 어렵다. 기능을 넘어서 각 사물들의 관계와 조합에 의해 세트라는 의미가 발생한다.


이 의미 속에서 사물은 일련의 질서를 이루며 소비자들의 소비를 충동한다. 이에 따르면 사물은 결코 무질서하게 소비되지 않는다. 각각의 사물들은 세트로 묶일 수 있는 다른 사물의 소비로 이어지도록 사물의 구입순서를 구성한다. 이 암묵적인 사물의 구입순서는 소비자를 미리 계산된 소비행태로 이끌지만, 정작 소비자는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구입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진다. 



■ 드럭스토어


드럭스토어는 가능한 한 모든 종류의 사물을 종합적으로 조금씩 배치하면서, 바Bar, 댄스홀, 영화관, 미술관, 어학실험실 등의 무형의 문화시설도 갖춰놓은 종합상업센터를 의미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양한 사물들을 같은 공간 안에 배치하고 이를 무형의 문화와 융합함으로써 소비의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해낸다. 드럭스토어는 물품, 예술, 여가, 일상을 한 데 뒤섞어 소비 그 자체를 문화로 만든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소비는 사물에 대한 소비를 넘어서서 일상, 여가, 미적 판단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드럭스토어가 꾸며 놓은 소비의 분위기 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균질화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사물은 그 자체의 기능과 특성을 잃어버린 채, 창조된 분위기의 색깔을 입은 사물의 기호로 치환된다. 그리고 이 균질한 사물들의 영원한 대체만이 이곳에 남는다. 소비자는 드럭스토어의 분위기 속에서 끝없이 갈아치워지는 진열대 위의 상품들을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데, 이는 사실 그 사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드럭스토어의 분위기를 소비하는 것이다.




1. 소비의 기적적인 현황



이처럼 인간은 사물의 밀림에 둘러싸여있다. 소비자들은 사물의 밀림 속에서 사물을 소비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이 자신에게 찾아오길 갈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물의 소비는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들이 소비를 통해 느끼는 ‘행복감’은 사실 그들이 상상 속에 만들어낸 행복의 모조품이며, 행복의 기호들이 축적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호들은 소비자 내면이나 사물 그 자체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소비사회가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조작하는 소비사회의 전유물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소비를 통해 느끼는 ‘행복감’은 진정한 행복도 아닐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소멸될 수 있는 실로 불안정한 착각이다.


모조품을 앞에 두고 진정한 행복이 내려오길 기대하는 이 기적에 대한 열망은, 진부한 일상생활에서 소비자들에게 일종의 희망을 부여하여 소비자들을 소비로 인도한다. 



■ 소비는 이미 소비자의 수중에 벗어나있다


거대한 경제성장의 과정은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힘이 닿지 않는 막연한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경제성장으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물질적 풍부함은 소비자에겐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하나의 축복이 된다. 이로부터 소비자는 행복의 창조자가 아니라 행복의 상속자가 되어버린다. 소비자는 이 은혜와 같은 풍부함 속에서 소비체계의 기호조작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 결과 소비자들은 소비행위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력을 상실한 채 체계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충실히 소비를 이행해나간다.



■ 기호작용의 분석


기호작용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기호는 현실을 현실의 기호 속으로, 역사를 변화의 기호 속으로 쫒아내는 역할을 한다. 


뉴스, 광고, 신문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현실은 엄밀히 말하면 현실 그 자체가 아닌 기호화된 현실이다. 이 기호화된 현실은 현실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이미지화 된 현실이라는 의미에서 비현실적이다. 즉 기호화된 현실은 현실적으로 꾸며진 비현실이다. 이러한 기호작용으로 인해 현실은 그 자체로부터 멀어진 기호로 환원된다. 


그곳에 없으면서도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은 기호작용의 산물이다. 기호와 미디어가 전하는 각종 극적인 현실(전쟁, 기아의 참상, 사건사고 등)을 마주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미디어의 시청자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장소(TV앞 소파)에 있을 뿐이다. TV앞에서 뉴스를 시청하며 한편으로는 극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현기증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어도 자신이 있는 이 거실 안에선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것은 기호에 의한 보호이고 현실에 대한 부정이며, 기적적인 안전이다.


미디어의 기호작용으로부터 시청자가 누리는 호기심과 안도감. 소비사회의 시청자들은 미디어로부터 기호를 소비하며 호기심과 안도감을 동시에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호는 소비자에게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스스로 증폭하면서 불안의 감정을 야기한다. 불안의 증폭은 소비자로 하여금 더 큰 안도감을 원하게 하고 이러한 심리적 매커니즘에 따라 기호는 지속적으로 소비의 동력을 획득한다. 이러한 안도감과 불안의 순환 속에서 현실은 지속적으로 부정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미디어를 통해 세계 각지의 여러 소식들을 접한다. 이로부터 현대인들은 자신의 눈과 귀가 세계로 확장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과 귀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환시(幻視)증상이 악화되어 간다. 그들은 전쟁, 학살, 난민과 같은 중대한 뉴스와 연예계 가십, 휴대폰 광고 간의 질적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뉴스를 통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사건이 의미하는 바와 중대성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채 넘어가기 십상이다. 미디어의 기호작용은 중대 뉴스와 연예계 가십 보도에 동일한 시간을 할애한다. 이 동질화의 기호작용이 미디어 소비자의 현실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중대 뉴스든 연예계 가십이든 그것은 소비자의 흥분을 위해 소비될 뿐이다.


“일상성은 이 초월성의 증대된 이미지와 기호를 먹고 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본 바와 같이 평온무사한 일상생활은 현실과 역사의 현기증을 필요로 하며, 흥분하기 위해서는 소비된 항상적인 폭력을 필요로 한다. (중략) (이는 한마디로 말해서) 베트남 전쟁의 영상 앞에서 편히 쉬고 있는 텔레비전 시청자의 모습이다.”[각주:2]



■ 기호작용의 모순과 이에 대처하는 소비체계의 전략


그러나 이러한 기호소비체계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기호와 이미지는 일방적이라는 측면에서 수동적이고 폭력과 흥분이라는 관점에서 쾌락주의적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소비자는 무의식적으로 깊은 죄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사회에서 권장되는 도덕주의적 규범은 소비자로 하여금 자발적이고 행동적이며 희생적인 가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소비사회는 소비를 조장하기 위해 기호조작이라는 쾌락주의적인 수단을 동원하지만 동시에 구성원들의 질서와 통합을 이루기 위하여 도덕주의적 규범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기호소비체계가 갖는 모순성이다.


기호소비체계는 이에 대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가운데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발견했다. 그것은 소비자의 지위가 마냥 수동적이고 안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TV앞 소비자들도 어떤 숙명적인 비극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소비체계는 기호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죄의식을 경감시켜준다. 이 ‘일상적인 숙명’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동차 사고이다. 미디어에서 필요 이상으로 빈번하게 보도되는 자동차 사고는 기호소비자들을 비극적 숙명 앞에 놓인 운명의 희생자로 탈바꿈시킨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자신도 결코 수동적이고 쾌락주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자신들도 언제든 비극적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죄의식의 중압감으로부터 해방된다.




2. 경제성장의 악순환



이 파트에서는 개인지출의 영역을 넘어서 행정기관에 의한 집단적 지출(공공지출)을 조명한다.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공공지출의 상당부분은 재분배를 목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러 통계자료를 참고하면 재분배정책은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재분배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최약자들에 대한 편향을 가중시킨다고 보드리야르는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강화하기위해 보드리야르는 이 장에서 공공지출의 심층적 분석을 수행한다.



■ 공해


현대사회는 경제성장, 산업발전, 기술발전의 부산물인 여러 종류의 공해에 직면한다. 상식적으로 공해는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체계수준에서도 공해는 과연 부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현대사회의 각종 공해(대기오염, 수질오염, 산림훼손, 도시의 복잡성, 인명손실 등)는 소비체계 안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소비지출을 불러일으킨다. 이 치유적 소비지출은 소비체계의 장부 안에 ‘소비’로 기록되고 “국민총생산과 여러 통계에 넣어져서 경제성장과 부(富)의 지수가 된다.”[각주:3]


이렇게 산출된 통계결과는 그 사회의 풍부함을 증명하는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그 사회의 실질적인 풍부함을 의미하는 것인가?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실질적인 생산성의 증가는 바로 이 “성장에 의한 성장의 치료라고 하는 유사요법에 의해 모두 흡수되고 탕진된다.”[각주:4]



이와 더불어 또 다른 심각한 공해는 현대소비사회에 만연한 보편적 불안감이다. 경제성장의 가속화를 위해 수반되는 노동력의 유동성은 피고용자들의 입장에서는 고용의 불안정을 의미한다. 이 보편적 불안감은 소비사회의 성장에 맞물려 상승함으로써 사회체계의 유지에 부담이 된다. 따라서 사회는 이 심리적 공해를 치유하기위해 각종 재분배정책과 보상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해치유적 대책도 마찬가지로 ‘소비지출’로 계산되고 심지어 국민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항목에 가산된다.


“마약 및 알콜의 소비, 그리고 과시를 위한 또는 보상적인 모든 지출, 게다가 군사예산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이 모든 것이 경제성장이다. 따라서 풍부함이다.”[각주:5]


경제성장이 진행될수록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공해가 경제성장의 동력을 저해시킨다. 소비체계는 다시금 성장동력을 재생산하기위해 공해치유에 지금껏 축적한 부를 쏟아붓는다. 이러한 순환은 결국 성장체계 자신이 체계의 부작용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헛돌기가 되어버린다.


공해치유를 위한 역(逆)기능적 소비가 기능적인 소비보다 더 빨리 증대되고 있기 때문에 체계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기생하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 경제성장의 부기화 또는 GNP의 신화 (부기의 환상)


국가체계의 부기에는 환상이 존재한다. 국가의 부기는 경제적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 경제적 합리성은 눈에 보이는 요소 외에 어떤 것도 그들의 회계 상에 집어넣지 않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회계 상에 모든 지출요소들을 균질화하여 합계한다. 가전제품의 소비, 학교의 건설, 알콜 소비, 만화 구입, 영화 관람, 유아용품 구매, 그리고 핵탄두의 생산에 이르는 모든 이질적인 소비지출이 회계 상에 숫자로 통합되어 동질화된다.


“생산된 모든 것은 생산되었다고 하는 사실 자체에 의해 신성화된다. 생산된 것, 계량 가능한 것 모두는 긍정된다.”[각주:6]


어떤 성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야기했든 간에 그것이 성장에 가산되는 한, 회계 상으로는 플러스(+)이며 긍정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소비지출의 긍정성에 대한 기준은 오로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여부에 의할 뿐이다.



■ 낭비


소비사회에서 낭비는 ‘악’,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왔다(그러나 실제 소비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은 바로 낭비의 가속화에 있다). 경제학자들이 낭비에 대해 규범적 잣대를 들이밀면서 가하는 온갖 악의에 찬 독설과, 그 어떤 낭비나 비효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균형에 대한 집착은 소비사회의 현실과 매우 괴리되어있다.


낭비된다는 것은 풍요로움을 방증하는 하나의 표지이다. 풍요가 없는 곳에서 낭비가 있을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낭비가 풍요로움을 증대시키기도 한다. 신제품이 등장하기 무섭게 구제품이 되어버리는 휴대폰 시장이나 자동차 시장을 상기해보자. 이전에 구매한 물품의 내구력이 미처 다 소진되기도 전에 소비자들은 자신의 물품을 신제품으로 갈아치운다. 만약 이러한 낭비, 신제품 출시와 동시에 이뤄지는 구매가 없다면, 경제성장이 과연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소비사회의 수많은 상품들은 사용을 위해 생산되기 이전에 낭비를 위해 생산된다. 


이떠한 낭비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경제학자들의 원칙과 규범은 오히려 소비체계의 성장을 저해하는 규범이다. 이러한 경제학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비효율성과 낭비로 인한 성장이 마치 자신들의 규범과 원칙에 합치된 결과물인 양 현실을 억지로 이론에 짜맞추며 자화자찬한다.


이러한 오류는 소비와 내구력의 소모, 상품의 사용에 요구되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발생한다. 그들은 마치 상품의 구매와 동시에 소비자의 효용이 충족된 것처럼 여기기 때문에 미처 소모되지 못한 내구력의 낭비에 대해서 포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을 고려하지 않아서 발생한 경제학의 모순에 대해서는 한 차례 포스팅한 바 있으므로 참고 바란다.


관련 포스팅

주류경제학의 '효용론' 비판 - 효용과 행복은 경제학 모형으로 계산될 수 있는가?



“사물의 ‘사용’은 완만한 소모를 초래할 뿐이며, (파괴와 낭비라는) 급격한 소모 속에서 창조되는 가치가 더 크다.”[각주:7]




  1.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본문으로]
  2.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pp.28 [본문으로]
  3.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pp.36 [본문으로]
  4.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pp.36 [본문으로]
  5.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pp.38 [본문으로]
  6.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pp.40 [본문으로]
  7. 장 보드리야르, 이상률 역,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1), pp.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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